정지용 시 '풍랑몽' 100주년…그 바다는 어디였을까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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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서 최대 규모 '지용제'
휘문고보 졸업반이던 1922년
바다 못 보고 마포나루서 상상
외로운 밤섬 닮은 식민지 청년
교토 유학 뱃길에 첫 바다 체험
'현대시의 아버지' 탄생 120주년
한국시인대회, 100명 넘게 모여
고두현 논설위원
휘문고보 졸업반이던 1922년
바다 못 보고 마포나루서 상상
외로운 밤섬 닮은 식민지 청년
교토 유학 뱃길에 첫 바다 체험
'현대시의 아버지' 탄생 120주년
한국시인대회, 100명 넘게 모여
고두현 논설위원
정지용 시인이 처음으로 쓴 시 ‘풍랑몽 1’은 바다를 다룬 작품이다. ‘외로운 졸음, 풍랑에 어리울 때’ ‘행선(行船)배 북이 웁니다’ 등 표현이 생생하다. 그는 그때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고향인 충북 옥천은 바다와 먼 내륙이고, 당시 재학 중이던 휘문고보는 서울 한복판인 지금의 종로구 계동에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바다를 노래했을까.
해답은 창작 노트에 있다. 그는 이 시를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하면서 창작 시기와 장소를 ‘1922년 3월 마포 하류 현석리’라고 밝혔다. 휘문고보 5학년 졸업반 때 마포나루에서 썼다는 얘기다. 마포는 넓은 강에 수많은 배가 오가는 교통요지였다. 그에게는 풍랑이 이는 바다와 배들이 북적이는 항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지난 24일 옥천에서 열린 ‘지용제’ 행사에서 ‘정지용 동북아 국제문학포럼’ 주제 발표자인 이경수 중앙대 교수가 제시했다. 이 교수는 “정지용이 1923년 4월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대한해협을 건넌 게 최초의 바다 체험이었다”며 “이후 ‘바다’ 연작과 ‘갈매기’ 같은 시로 이어지고 금강산 기행 때 ‘절정’과 ‘비로봉’이라는 시의 동해로 확장됐으니 이는 모두 두 번째 시집 <백록담>을 예비하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지용에게 바다는 성장기 독서 체험과 마포나루의 상상 체험, 대한해협의 뱃길 체험을 넘어 금강산과 동해, 한라산과 백록담까지 아우르는 문학의 큰 줄기이자 시대의 격랑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그의 이런 정서는 내륙의 작은 호수와 강물에도 스며 있다. 이날 포럼에서 화제를 모은 또 하나의 논문은 정지용 시와 고향의 지명에 관한 것이었다. 김묘순 충북도립대 교수는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꾸 간지러워’라는 정지용 시 ‘호수 2’와 시인의 생가·외가 인근에 있는 옥천군 동이면 ‘올목’이라는 마을에 주목했다.
올목은 ‘오리 모가지’처럼 생긴 지형에서 유래한 지명이며, 강변의 ‘압구정’이나 ‘압촌(鴨村·오리목)’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지용 생가와 외가, 올목의 위치를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까지 제시하면서 “이런 시적 정서는 교토의 도시샤대학 옆에 흐르는 ‘압천(鴨川·오리 내)’을 제목으로 삼은 유학 시절의 시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정지용 시의 지명 관련 연구와 이를 기반으로 한 문화콘텐츠 개발을 앞당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포럼이 끝난 뒤 위쪽 교동저수지에 들렀더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상징물이 물가에 떠 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라는 시 ‘호수 1’을 모티브로 한 조각상이다.
오후에는 행사 하이라이트인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 수상작은 최동호 시인의 ‘어머니 범종 소리’다. ‘어린 시절 새벽마다 콩나물시루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어머니의 ‘연탄불 가는 소리’와 ‘산사의 새벽 범종 소리’가 겹쳐 있다.
심사위원들은 “청각과 시각을 결합한 미의식으로 쉬우면서도 깊은 사유의 공간을 천착한 작품”(오세영 시인), “과거의 소리를 범종 소리로 환유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온유하고 너그럽다”(이숭원 문학평론가), “‘순간의 시학’과 ‘통합의 정신’이 원숙한 경지에 진입했다”(오형엽 문학평론가)고 극찬했다.
최동호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대학 3학년 때부터 푹 빠진 정지용은 연구 대상이면서 시 쓰기의 지표였다”며 “시집 <백록담>을 연구하며 그가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번 수상작도 정지용 시 ‘장수산’을 생각하면서 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용 시를 처음 읽던 날의 떨리는 마음으로 서정시의 구극을 추구하는 단독자의 외로움을 견디면서 ‘아직 늦지 않았다. 오직 시에 집중하라’는 화두를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이근배 시인은 시상식에 앞서 열린 한국시인대회 강연에서 “정지용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의 시 ‘카페 프란스’에 나오는 루바시카(블라우스와 비슷한 러시아의 남성용 겉저고리)를 맞춰 입고 다닐 정도였다”며 “미당 선생도 ‘근배야, 지용은 이미 세 고개를 넘은 우리 스승이지. 난 이제 겨우 한 고개야’라며 그 경지를 부러워했다”고 회고했다.
1970년 최초의 정지용 연구 석사논문을 쓴 오탁번 시인은 “당시 지용이 해금되기 전이었기에 잡혀갈 각오를 하고 썼다”고 했다. 이건청 시인은 “지용의 문학사적 자장의 넓이는 가히 독보적”이라고 평했다. 젊은 시인 이지호 씨는 “우리 곁에 있는 현재형 시인인 동시에 내일 백일장에서 새로 태어날 입상자처럼 미래에도 있는 시인이 정지용”이라며 한국 시의 앞날을 밝게 내다봤다.
이번 축제를 총괄하며 13년째 지용회를 이끌고 있는 유자효 시인은 “정지용 시인이 해금된 1988년 개인 이름을 건 국내 최초의 문학축제인 제1회 지용제가 열렸고 이듬해 박두진 시인이 정지용문학상 첫 수상자가 된 이후 지용제는 현대시의 역사가 됐다”며 “올해는 가장 많은 시인이 참가한 시인대회로 베풀어져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정지용 탄생 120주년이자 ‘풍랑몽 1’ 100주년인 올해는 한국 현대시 100년사를 기념하는 해다. 코로나 때문에 3년 만에 얼굴을 맞댄 ‘지용제’에 100명이 넘는 시인이 참가해 풍성한 연구성과까지 거뒀으니, 해마다 프랑스 전역에서 2주간 펼치는 ‘시인들의 봄’ 축제를 본 듯했다. 잔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시는 타인에게로 향하는 가장 짧은 길”이라는 폴 엘뤼아르의 명구를 오래도록 생각했다.
해답은 창작 노트에 있다. 그는 이 시를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하면서 창작 시기와 장소를 ‘1922년 3월 마포 하류 현석리’라고 밝혔다. 휘문고보 5학년 졸업반 때 마포나루에서 썼다는 얘기다. 마포는 넓은 강에 수많은 배가 오가는 교통요지였다. 그에게는 풍랑이 이는 바다와 배들이 북적이는 항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오리 모가지 닮은 마을 '올목'
이 시에 나오는 ‘물 건너 외딴섬’은 밤섬이다. 식민지 조선 청년의 비애와 불안감에 젖은 그는 이곳 마포나루에서 드넓은 바다를 상상하며 물 건너 새로운 세계를 꿈꾸지 않았을까. 그래서 제목에 ‘몽(夢)’을 붙였으리라. 1923년 3월에 쓴 시 ‘향수’의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구절도 바다 체험 이전의 표현이다.이 같은 관점은 지난 24일 옥천에서 열린 ‘지용제’ 행사에서 ‘정지용 동북아 국제문학포럼’ 주제 발표자인 이경수 중앙대 교수가 제시했다. 이 교수는 “정지용이 1923년 4월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대한해협을 건넌 게 최초의 바다 체험이었다”며 “이후 ‘바다’ 연작과 ‘갈매기’ 같은 시로 이어지고 금강산 기행 때 ‘절정’과 ‘비로봉’이라는 시의 동해로 확장됐으니 이는 모두 두 번째 시집 <백록담>을 예비하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지용에게 바다는 성장기 독서 체험과 마포나루의 상상 체험, 대한해협의 뱃길 체험을 넘어 금강산과 동해, 한라산과 백록담까지 아우르는 문학의 큰 줄기이자 시대의 격랑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그의 이런 정서는 내륙의 작은 호수와 강물에도 스며 있다. 이날 포럼에서 화제를 모은 또 하나의 논문은 정지용 시와 고향의 지명에 관한 것이었다. 김묘순 충북도립대 교수는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꾸 간지러워’라는 정지용 시 ‘호수 2’와 시인의 생가·외가 인근에 있는 옥천군 동이면 ‘올목’이라는 마을에 주목했다.
올목은 ‘오리 모가지’처럼 생긴 지형에서 유래한 지명이며, 강변의 ‘압구정’이나 ‘압촌(鴨村·오리목)’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지용 생가와 외가, 올목의 위치를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까지 제시하면서 “이런 시적 정서는 교토의 도시샤대학 옆에 흐르는 ‘압천(鴨川·오리 내)’을 제목으로 삼은 유학 시절의 시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정지용 시의 지명 관련 연구와 이를 기반으로 한 문화콘텐츠 개발을 앞당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포럼이 끝난 뒤 위쪽 교동저수지에 들렀더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상징물이 물가에 떠 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라는 시 ‘호수 1’을 모티브로 한 조각상이다.
실개천 옆 생가·문학관도 '북적'
그곳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청석교 옆에 도착하니 바로 옆이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다. 이날 한국시인협회장이자 지용회장인 유자효 시인과 올해 정지용문학상 수상자인 최동호 시인, 역대 수상자 등 시인 100명 이상이 ‘지용제’에 참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오후에는 행사 하이라이트인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 수상작은 최동호 시인의 ‘어머니 범종 소리’다. ‘어린 시절 새벽마다 콩나물시루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어머니의 ‘연탄불 가는 소리’와 ‘산사의 새벽 범종 소리’가 겹쳐 있다.
심사위원들은 “청각과 시각을 결합한 미의식으로 쉬우면서도 깊은 사유의 공간을 천착한 작품”(오세영 시인), “과거의 소리를 범종 소리로 환유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온유하고 너그럽다”(이숭원 문학평론가), “‘순간의 시학’과 ‘통합의 정신’이 원숙한 경지에 진입했다”(오형엽 문학평론가)고 극찬했다.
최동호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대학 3학년 때부터 푹 빠진 정지용은 연구 대상이면서 시 쓰기의 지표였다”며 “시집 <백록담>을 연구하며 그가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번 수상작도 정지용 시 ‘장수산’을 생각하면서 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용 시를 처음 읽던 날의 떨리는 마음으로 서정시의 구극을 추구하는 단독자의 외로움을 견디면서 ‘아직 늦지 않았다. 오직 시에 집중하라’는 화두를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이근배 시인은 시상식에 앞서 열린 한국시인대회 강연에서 “정지용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의 시 ‘카페 프란스’에 나오는 루바시카(블라우스와 비슷한 러시아의 남성용 겉저고리)를 맞춰 입고 다닐 정도였다”며 “미당 선생도 ‘근배야, 지용은 이미 세 고개를 넘은 우리 스승이지. 난 이제 겨우 한 고개야’라며 그 경지를 부러워했다”고 회고했다.
1970년 최초의 정지용 연구 석사논문을 쓴 오탁번 시인은 “당시 지용이 해금되기 전이었기에 잡혀갈 각오를 하고 썼다”고 했다. 이건청 시인은 “지용의 문학사적 자장의 넓이는 가히 독보적”이라고 평했다. 젊은 시인 이지호 씨는 “우리 곁에 있는 현재형 시인인 동시에 내일 백일장에서 새로 태어날 입상자처럼 미래에도 있는 시인이 정지용”이라며 한국 시의 앞날을 밝게 내다봤다.
이번 축제를 총괄하며 13년째 지용회를 이끌고 있는 유자효 시인은 “정지용 시인이 해금된 1988년 개인 이름을 건 국내 최초의 문학축제인 제1회 지용제가 열렸고 이듬해 박두진 시인이 정지용문학상 첫 수상자가 된 이후 지용제는 현대시의 역사가 됐다”며 “올해는 가장 많은 시인이 참가한 시인대회로 베풀어져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시 100년사 기념
이날 무대에서는 재능시낭송협회 낭송가 지영란 오선숙 윤정희 씨가 ‘풍랑몽 1·2’와 ‘비로봉 2’ ‘구성동 2’를 낭랑한 목소리로 합송했다. 시 노래 ‘향수’를 부른 성악가 박인수 전 서울대 교수의 제자들이 펼친 가곡 메들리와 김재희 서문탁 등의 흥겨운 공연이 밤까지 이어졌다.정지용 탄생 120주년이자 ‘풍랑몽 1’ 100주년인 올해는 한국 현대시 100년사를 기념하는 해다. 코로나 때문에 3년 만에 얼굴을 맞댄 ‘지용제’에 100명이 넘는 시인이 참가해 풍성한 연구성과까지 거뒀으니, 해마다 프랑스 전역에서 2주간 펼치는 ‘시인들의 봄’ 축제를 본 듯했다. 잔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시는 타인에게로 향하는 가장 짧은 길”이라는 폴 엘뤼아르의 명구를 오래도록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