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납품단가 연동제 의무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내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 주목된다. “단가연동제를 강제하면 시장 효율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협력업체의 수익성을 보호해주는 대신 소비자 후생을 줄인다”는 이유에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격언처럼 납품단가 연동제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빈사 상태에 몰린 중소기업계의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자동 반영토록 강제하는 것은 우리 민법의 근간인 사적 계약의 자유를 공적 규제로 파괴하는 행보다. 선의로 포장했지만, 반(反)시장적 가격 규제로 병폐와 부작용을 불러올 게 뻔하다. 그러기에 2008년부터 거론돼온 제도가 14년째 공회전한 것 아닌가. 납품단가 연동제를 법제화한 나라가 세계적으로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시장경제에 대한 간섭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 가격 규제다. 이는 경제 상황이 나쁠 때도 예외가 아니다. 납품단가 연동에 익숙해진 중소기업에 자기 혁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글로벌 경쟁 시대에 협력업체의 혁신이 없다면 원청업체도 함께 공멸할 것이다. 원사업자가 하청에 맡기던 일을 직접 하거나 해외 아웃소싱으로 돌리면 협력업체에 더 큰 손실로 돌아간다.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데 따르는 소비자 후생 감소는 또 어떤가. 단가연동 의무제의 위험을 소비자가 공동 부담하는 꼴이 된다.

그런데도 제도 도입에는 여야가 이견이 없다. 국민의힘은 새 정부 출범 후 ‘1호 법안’으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골자로 한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 제도를 7대 입법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연동제 시범 운영에 나선 데 이어 연내 반드시 입법화한다는 계획이다.

가격 결정은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야지 법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별도 지원 대책으로 푸는 게 맞다. KDI가 “특정 계약 형태를 강제하기보다는 협상력 격차를 완화하고 남용 행위를 규율하는 것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