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추억 여행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오명숙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msoh@kofwst.org
오랜만에 달려보는 9번 길은 낯설었다. 이 타운을 지탱하던 IBM이 거대한 공장을 닫고 다른 곳으로 이전한 뒤 거리는 예전 같지 않고,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가 이 작은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미국 동부에 일이 있어 갔다가 무리해서 옛날에 살던 동네를 방문했다. 학위를 받고 두 박사가 한 지역에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결국 내가 서부의 국립연구소를 떠나 이사한 곳이었다. 둘째도 여기서 얻었다. 가족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부부 모두 직장생활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행복한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하룻밤만 머무는 일정이어서 많은 것은 할 수 없었지만 다니던 연구소로 향했다. 여기서 얻은 기업연구소의 소중한 경험과 교육 자료 등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큰 도움이 됐다. 내가 떠나고 몇 년 뒤 회사는 다른 정유사와 합병돼 더 큰 회사가 됐지만, 연구소는 폐쇄돼 구글 지도에는 옛 텍사코사연구소라고 나온다.
지도와 함께 길을 더듬어 가본다. 점심때 샌드위치를 자주 사던 델리가 보인다. 지금은 피자집이다. 곧 연구소에 다다랐다. 주차장은 그대로인데 건물은 모두 철거돼 울창한 숲만 보였다. 차를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차를 돌렸다. 고속도로가 아닌 동네 길로 경로를 잡아본다. 이쯤 소아과가 있었는데. 가끔 점심 회식을 하던 다이너도 보인다. 딸을 보러 온 아버지가 혼자 차를 몰고 뉴욕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을 못 찾아 전화했던 곳이다.
매일 출근하던 길은 반갑기만 하다. 윗부분에 약간의 단풍도 보이지만 내가 좋아하던 여름의 진 녹색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들, 넓은 잔디밭 마당을 가진 길가의 집들, 익숙한 길 이름이 새삼 정겹다. 울창한 숲길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
동네 입구에서 푸른 잔디 언덕에 네 집이 띄엄띄엄 일렬로 서 있던 풍경을 기대하다가 깜짝 놀랐다. 엄청나게 자란 나무들 때문이다. 우리 집 언덕 중간의 바위가 더 이상 커 보이지 않는다. 28년의 세월을 새삼 깨닫게 한다. 도로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 본다. 지난 세월을 실감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공항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들과 자주 가던 농장 앞을 지나 경치 좋은 파크웨이로 방향을 잡아준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4년 반 동안만 이 동네에 살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리운 걸까? 미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산 동네이고, 내가 너무 좋아했던 동네여서? 가족이 행복하게 미래를 꿈꾸던 곳이어서? 정겨운 사람들과 쌓은 추억이 애틋해서? 아니면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어서 그럴까? 동네를 떠나면서 무엇인지 모를 애잔함이 올라온다.
미국 동부에 일이 있어 갔다가 무리해서 옛날에 살던 동네를 방문했다. 학위를 받고 두 박사가 한 지역에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결국 내가 서부의 국립연구소를 떠나 이사한 곳이었다. 둘째도 여기서 얻었다. 가족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부부 모두 직장생활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행복한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하룻밤만 머무는 일정이어서 많은 것은 할 수 없었지만 다니던 연구소로 향했다. 여기서 얻은 기업연구소의 소중한 경험과 교육 자료 등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큰 도움이 됐다. 내가 떠나고 몇 년 뒤 회사는 다른 정유사와 합병돼 더 큰 회사가 됐지만, 연구소는 폐쇄돼 구글 지도에는 옛 텍사코사연구소라고 나온다.
지도와 함께 길을 더듬어 가본다. 점심때 샌드위치를 자주 사던 델리가 보인다. 지금은 피자집이다. 곧 연구소에 다다랐다. 주차장은 그대로인데 건물은 모두 철거돼 울창한 숲만 보였다. 차를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차를 돌렸다. 고속도로가 아닌 동네 길로 경로를 잡아본다. 이쯤 소아과가 있었는데. 가끔 점심 회식을 하던 다이너도 보인다. 딸을 보러 온 아버지가 혼자 차를 몰고 뉴욕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을 못 찾아 전화했던 곳이다.
매일 출근하던 길은 반갑기만 하다. 윗부분에 약간의 단풍도 보이지만 내가 좋아하던 여름의 진 녹색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들, 넓은 잔디밭 마당을 가진 길가의 집들, 익숙한 길 이름이 새삼 정겹다. 울창한 숲길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
동네 입구에서 푸른 잔디 언덕에 네 집이 띄엄띄엄 일렬로 서 있던 풍경을 기대하다가 깜짝 놀랐다. 엄청나게 자란 나무들 때문이다. 우리 집 언덕 중간의 바위가 더 이상 커 보이지 않는다. 28년의 세월을 새삼 깨닫게 한다. 도로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 본다. 지난 세월을 실감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공항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들과 자주 가던 농장 앞을 지나 경치 좋은 파크웨이로 방향을 잡아준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4년 반 동안만 이 동네에 살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리운 걸까? 미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산 동네이고, 내가 너무 좋아했던 동네여서? 가족이 행복하게 미래를 꿈꾸던 곳이어서? 정겨운 사람들과 쌓은 추억이 애틋해서? 아니면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어서 그럴까? 동네를 떠나면서 무엇인지 모를 애잔함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