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편집장 레터
험난한 탄소중립의 길
최근 ‘2050 탄소중립’을 공약하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2040년 달성이라는 야심 찬 계획도 눈에 띕니다. 공약대로라면 미래는 낙관적입니다. 기후 위기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고, 기업도 응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탄소중립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기업의 눈앞에 놓인 과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 실은 ‘한국의 기후 리더’ 선정 결과는 이를 잘 확인시켜줍니다. 블룸버그와 함께 온실가스를 연간 3만 톤 이상 배출하는 상장기업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와 총배출량을 동시에 개선한 기업은 33곳에 그쳤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인식되던 회사들이 대거 탈락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국내 주력 제조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탄소중립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조사는 최근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ESG 정보 공시 표준화와 관련해서도 시사점을 줍니다.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하지만, 여전히 본사와 국내 사업장을 포함한 개별 기준 집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통계 범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거나 연도별 또는 기업 간 비교를 어렵게 구성한 곳도 많습니다. ‘한국의 기후 리더’는 글로벌 이니셔티브와 평가기관이 요구하는 연결 기준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사 기간이 3개월가량 걸렸습니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등이 주도하는 공시 표준화 작업은 ESG 경영과 ESG 투자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많은 나라의 규제당국과 투자자들이 표준 제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재무 분야의 IFRS처럼 전 세계로 확산돼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는 건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ESG 의무 공시 시대가 열리면 기업들은 완전히 달라진 경쟁 환경을 맞게 됩니다. 국경을 넘어 기업 간 비교 평가가 손쉬워집니다. 타사와의 차이가 한눈에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공시 표준화 동향은 이번 호 커버 스토리에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특히 ISSB와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초안을 상세히 다룬 ‘공통 키워드는 TCFD…3대 공시기준 비교’ 기사의 일독을 권합니다.

장승규 <한경ESG> 편집장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