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평화로운 식물 세계?…"여기는 소리 없는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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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식물의 세계
김진옥·소지현 지음
다른 / 368쪽|2만원
식물을 위한 변론
맷 칸데이아스 지음 / 조은영 옮김
타인의사유 / 264쪽|1만6800원
식물의 생존 전략 다룬 책 두 권
세계에서 가장 큰 꽃 '라플레시아'
밀림서 생존하려 잎·줄기·뿌리 떼고
모든 에너지 꽃 피우기 위해서만 써
김진옥·소지현 지음
다른 / 368쪽|2만원
식물을 위한 변론
맷 칸데이아스 지음 / 조은영 옮김
타인의사유 / 264쪽|1만6800원
식물의 생존 전략 다룬 책 두 권
세계에서 가장 큰 꽃 '라플레시아'
밀림서 생존하려 잎·줄기·뿌리 떼고
모든 에너지 꽃 피우기 위해서만 써
동물의 세계에도 드라마가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깊은 울림을 주는 서사가 펼쳐진다. 동물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다.
식물은 어떨까. 신간 <극한 식물의 세계>는 ‘식물의 세상에도 드라마는 있다’고 말한다. 김진옥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식물 분야 전문위원과 소지현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이 쓴 책이다. 책에 따르면 식물들의 생존경쟁도 만만치 않다. 정적이고 평화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저마다 기발한 전략을 내세워 생존을 위한 암투를 벌인다.
우리가 아는 지상의 식물 모습은 4억6600만 년 전 나타났다. 물속에서 광합성을 하던 녹조류가 물 밖에 노출되면서다. 대부분 금방 죽어버렸지만, 물 밖에서도 살 수 있는 돌연변이가 생겨났다.
바로 이끼다. 경쟁자가 없는 육지는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가 불어나자 경쟁 압력이 높아졌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인 결과 이끼보다 더 높이 자랄 수 있는 고사리식물, 물기가 없는 곳에서도 자랄 수 있는 겉씨식물,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 등이 차례로 나타났다.
책은 더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자이언트 라플레시아가 사는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잎도, 줄기도, 심지어 뿌리도 없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땅바닥에서 거대한 꽃 한 송이를 피우는 게 전부다. 사실 자이언트 라플레시아는 꽃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포도나무 속에 몰래 숨어 지낸다. 기생 식물이다. 잎을 낼 에너지도, 뿌리를 뻗을 에너지도 모두 아껴뒀다가 오로지 꽃을 피우는 데만 쏟는다.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인도네시아 밀림엔 갖가지 식물이 넘쳐난다. 경쟁자들이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자이언트 라플레시아가 선택한 방법은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 레드우드도 마찬가지다. 미국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있는 한 나무는 116m가 넘는다. 아파트 39층과 맞먹는 높이다. 당연히 햇빛을 받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높은 곳까지 올려보내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레드우드가 선택한 전략은 ‘비와 안개 속에 있는 수분 흡수하기’다. 이 나무는 뿌리뿐만 아니라 나무껍질과 잎을 통해서도 물을 흡수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식물들의 놀라운 생존 전략은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나무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나무의 어린싹인 죽순은 땅 위로 갑자기 솟아난 뒤 거침없이 자란다. 잎도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어떻게 가능한 걸까. 비밀은 엄마 대나무와 연결된 뿌리줄기에 있다. 엄마 대나무에서 공급받은 영양분 덕분에 광합성을 하지 않고도 쑥쑥 클 수 있다. 38일째가 되면 키가 약 13m에 이르고 4개월째가 되면 스스로 만든 양분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도 새 뿌리줄기를 뻗어 또 다른 죽순을 키워낸다. 대나무 한 개체는 땅속으로 서로 연결된 거대한 대나무의 가지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키우는 난초도 기발한 전략을 쓰는 식물이다. 씨앗이 1㎜가 안 될 정도로 작다. 먼지처럼 날아다니며 멀리 퍼져나갈 수 있다. 문제라면 너무 ‘경량화’에 치중하다 보니 싹을 틔울 때 필요한 영양분인 배젖이 씨앗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초는 파트너를 찾았다. 곰팡이 같은 균사다. 난초는 균사에서 영양분을 얻어 싹을 틔우고, 자기 뿌리에 균이 살게 해준다. 이런 공생 관계 덕에 난초는 국화과(3만2000여 종) 다음으로 많은 종(2만8000여 종)을 거느린 식물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식물을 위한 변론>은 미국인 맷 칸데이아스가 쓴 책이다. 그는 생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식물을 위한 변론’이란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먼 오지의 동물만 다루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나는 수없이 많은 놀라운 생태계의 상호작용이 우리 집 뒤뜰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한다. 다루는 주제는 <극한 식물의 세계>와 비슷하다. 자이언트 라플레시아, 변경주선인장, 자바오이, 파리지옥 등 두 책에서 중복 출연하는 식물도 많다. <극한 식물의 세계>가 식물 다큐멘터리처럼 읽힌다면, <식물을 위한 변론>은 과학 에세이처럼 읽힌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식물은 어떨까. 신간 <극한 식물의 세계>는 ‘식물의 세상에도 드라마는 있다’고 말한다. 김진옥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식물 분야 전문위원과 소지현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이 쓴 책이다. 책에 따르면 식물들의 생존경쟁도 만만치 않다. 정적이고 평화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저마다 기발한 전략을 내세워 생존을 위한 암투를 벌인다.
우리가 아는 지상의 식물 모습은 4억6600만 년 전 나타났다. 물속에서 광합성을 하던 녹조류가 물 밖에 노출되면서다. 대부분 금방 죽어버렸지만, 물 밖에서도 살 수 있는 돌연변이가 생겨났다.
바로 이끼다. 경쟁자가 없는 육지는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가 불어나자 경쟁 압력이 높아졌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인 결과 이끼보다 더 높이 자랄 수 있는 고사리식물, 물기가 없는 곳에서도 자랄 수 있는 겉씨식물,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 등이 차례로 나타났다.
책은 더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자이언트 라플레시아가 사는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잎도, 줄기도, 심지어 뿌리도 없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땅바닥에서 거대한 꽃 한 송이를 피우는 게 전부다. 사실 자이언트 라플레시아는 꽃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포도나무 속에 몰래 숨어 지낸다. 기생 식물이다. 잎을 낼 에너지도, 뿌리를 뻗을 에너지도 모두 아껴뒀다가 오로지 꽃을 피우는 데만 쏟는다.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인도네시아 밀림엔 갖가지 식물이 넘쳐난다. 경쟁자들이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자이언트 라플레시아가 선택한 방법은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 레드우드도 마찬가지다. 미국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있는 한 나무는 116m가 넘는다. 아파트 39층과 맞먹는 높이다. 당연히 햇빛을 받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높은 곳까지 올려보내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레드우드가 선택한 전략은 ‘비와 안개 속에 있는 수분 흡수하기’다. 이 나무는 뿌리뿐만 아니라 나무껍질과 잎을 통해서도 물을 흡수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식물들의 놀라운 생존 전략은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나무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나무의 어린싹인 죽순은 땅 위로 갑자기 솟아난 뒤 거침없이 자란다. 잎도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어떻게 가능한 걸까. 비밀은 엄마 대나무와 연결된 뿌리줄기에 있다. 엄마 대나무에서 공급받은 영양분 덕분에 광합성을 하지 않고도 쑥쑥 클 수 있다. 38일째가 되면 키가 약 13m에 이르고 4개월째가 되면 스스로 만든 양분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도 새 뿌리줄기를 뻗어 또 다른 죽순을 키워낸다. 대나무 한 개체는 땅속으로 서로 연결된 거대한 대나무의 가지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키우는 난초도 기발한 전략을 쓰는 식물이다. 씨앗이 1㎜가 안 될 정도로 작다. 먼지처럼 날아다니며 멀리 퍼져나갈 수 있다. 문제라면 너무 ‘경량화’에 치중하다 보니 싹을 틔울 때 필요한 영양분인 배젖이 씨앗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초는 파트너를 찾았다. 곰팡이 같은 균사다. 난초는 균사에서 영양분을 얻어 싹을 틔우고, 자기 뿌리에 균이 살게 해준다. 이런 공생 관계 덕에 난초는 국화과(3만2000여 종) 다음으로 많은 종(2만8000여 종)을 거느린 식물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식물을 위한 변론>은 미국인 맷 칸데이아스가 쓴 책이다. 그는 생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식물을 위한 변론’이란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먼 오지의 동물만 다루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나는 수없이 많은 놀라운 생태계의 상호작용이 우리 집 뒤뜰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한다. 다루는 주제는 <극한 식물의 세계>와 비슷하다. 자이언트 라플레시아, 변경주선인장, 자바오이, 파리지옥 등 두 책에서 중복 출연하는 식물도 많다. <극한 식물의 세계>가 식물 다큐멘터리처럼 읽힌다면, <식물을 위한 변론>은 과학 에세이처럼 읽힌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