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래퍼 카녜이 웨스트(45)는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린 인플루언서이자 자신의 브랜드 ‘이지(Yeezy)’ 등을 운영하는 패션기업인이다. 그가 협업 중이던 패션기업 갭과의 브랜드 계약 파기를 최근 선언하자 지난 13일 이 회사 주가는 6.22% 급락했다. 협업 브랜드 ‘이지 갭’ 출시가 중단되면서 성장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글로벌 패션업계가 인플루언서를 마케팅에 활용한 게 하루 이틀 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영향력이 커졌음을 입증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눈에 띄어 관심을 끈다.

○필수가 된 인플루언서 마케팅

모델 켄달 제너
모델 켄달 제너
30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국내 한 패션기업은 최근 자사몰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유명 패션 인플루언서 크루(단체)와 계약을 맺었다. 이 기업은 이 크루 소속 인플루언서들이 자사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대가로 광고비를 지급했다.

이는 국내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활동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인플루언서들은 기획사나 크루에 소속돼 움직인다. 기업들은 기획사에 광고비를 건네고, 이들과 정식 계약을 맺거나 신상품 제공 등을 약속하고 자기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활동하도록 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인플루언서들이 쇼핑몰에서 사진을 올리고 활동하기 시작하면 팬들도 함께 따라와 방문객 유입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막강해진 'SNS 스타' 파워…패션기업 주가도 '쥐락펴락'
광고비용은 인플루언서의 팔로어 수와 광고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인플루언서는 팔로어 수가 △100만 명 이상이면 ‘메가 인플루언서’ △10만~100만 명은 ‘매크로’ △1만~10만 명은 ‘마이크로’로 나뉜다. 팔로어 수가 100만 명을 넘기면 1회 광고비가 2000만원을 넘는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허브에 따르면 전 세계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은 2016년 2조4381억원에서 작년 19조7905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올해에는 23조529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틱톡 등 SNS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데 맞춰 시장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국내 인플루언서 시장을 2조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인쇄광고 시장(1조6609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명품업계도 ‘러브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지자 콧대 높기로 유명한 명품업체들조차 “우리 제품을 착용해달라”고 구애에 나섰다. 고가의 상품을 인플루언서에게 무상으로 대여해주거나 아예 선물한다. 명품 브랜드의 VIP와 인플루언서가 주로 타깃이 된다.

패션·뷰티 패션몰 ‘한스스타일’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 유한나 대표가 그렇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발렌티노는 그에게 300만원대 ‘가라바니’ 핸드백을 선물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발렌티노 제품들이 인기를 끈 게 계기가 됐다.

여성 의류몰 11am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 임여진 대표는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로부터 협찬받았다. 고가의 까르띠에 상품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프랑스 파리 방돔의 까르띠에 매장에 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에 노출했다.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콜로프도 파리 방돔 매장을 찾은 한 소비자가 유명 인플루언서임을 확인하고, 이례적으로 매장 내 라이브 방송을 허락했다.

○커지는 영향력은 ‘양날의 칼’

일부 인플루언서는 기업 경영에까지 간섭해 위협 요인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갭이 매장에서 ‘이지 갭’ 의류를 옷걸이에 걸어 진열하자 협업 대상자인 카녜이 웨스트 측이 “비닐봉지에 넣어서 바닥에 진열해야 한다”며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팔로어 3억 명을 거느린 미국의 사업가이자 모델 카일리 제너는 ‘인스타그램을 다시 인스타그램답게’라는 캠페인을 벌여 메타(페이스북) 경영진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중국의 쇼트폼 플랫폼인 틱톡을 모방해 동영상 기능을 중심으로 인스타 서비스를 업데이트하려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메타는 결국 이 업데이트를 없던 일로 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