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산하기관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의 내년 지방 이전 계획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 이전 예산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아예 누락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위해 이전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겨 발표한 게 탈이 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본지 취재 결과 내년 지방 이전을 공표했던 서울 서대문구 소재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의 지방 이전 비용이 내년도 예산안에 담겨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예산안에 관련 비용이 담기지 않을 경우 내년 지방 이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 예산안은 국회로 넘어가 심사 중이고 12월 의결된다. 그럼에도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아직 기획재정부와 예산 반영과 관련된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 책정 과정에서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의 지방 이전에 대한 예산 요청이 전혀 없었고, 정부안 제출 이후에도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의결이 10월에 있기 때문에 이후 예산 반영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부의 정식 절차를 지켜야 하기에 예산안을 아직 반영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의지만 있다면 10월 균형위 정기 의결 이전에도 예산 반영은 언제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8월 내년 이전을 위해 균형위 의결을 받았고 의결 직후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이전 비용을 포함했다.

내년 이전 계획이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지난해 12월 대전시, 대전 동구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내년 지방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10월에 2025년 이전 계획을 발표했던 터여서 불과 2개월 만에 기존 계획을 뒤엎고 2년을 앞당긴 것이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아직까지 필요 예산이 얼마인지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를 앞둔 대전시의 선심성 행정에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기상청은 지난해 5월 ‘기상산업클러스터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대전을 기상 산업 중심지로 만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를 기반으로 균형위는 같은 해 10월 한국기상산업기술원 2025년 이전 계획을 의결까지 마무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대전시와 동구가 개입해 2023년으로 이전을 앞당긴 것이다.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둔 시점이다.

행정학계 관계자는 “정부 예산안이 나올 때까지 아무런 요청도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된 계획이 없었다는 방증”이라며 “선거용 ‘공수표’ 계획에 장단을 맞추다가 뒤탈이 난 듯하다”고 꼬집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