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허준이 부친의 창의 교육…"자녀에 몰입할 시간 줘야"
“저는 통계학자라 수학이 뭔지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자식에게 수학을 가르치면 누구보다 잘 가르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제 방식으로 수학을 가르친 게 준이(허준이 교수)가 학창시절 수학을 멀리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준이가 순수 수학으로 다시 돌아온 건 대학원에 가서니까,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아버지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사진)를 최근 고려대에서 만났다. 그는 “부모의 방식을 강요하기보다는 아이의 시행착오를 한 발 뒤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 교수는 오는 11월 2일 ‘글로벌인재포럼 2022’ 특별세션에서 ‘창의적 인재 교육’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허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4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허 교수는 아들을 수학 영재로 키우고 싶었지만 기대처럼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학만 빼고 다른 걸 하고 싶어 했다”며 “청소년기에 문학·철학에 관심이 쏠린 건 수학에 대한 반감이기도 했다”고 했다. 아들은 수능을 준비할 때도 유독 수학이 약했다. 허 교수는 “언어영역은 뛰어났는데, 오히려 수리영역이 약해 고민이었다”고 했다.

부모는 자신이 아는 방식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자녀가 몰입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게 허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여유가 없으면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수학엔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도 아들은 1주일 동안 단 하나의 체스 문제에 골몰하곤 했다. 허 교수는 “기존 체스판 모양을 뒤바꿔 문제를 단순화하는 직관을 발휘한 건데, 하나에 몰입할 시간이 주어져야 이런 창의성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대신 직접 문제를 내는 교육방식을 강조했다. 그는 “아이에게 수학 학습지 10쪽을 풀라고 할 게 아니다”며 “가정에서 문제를 내는 사람은 아이, 문제를 푸는 사람은 부모여야 한다”고 했다.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손자 허단 군도 부모에게 수학 문제를 낸다. 동그라미 여러 개를 그리고 몇 개인지 세보라는 식이다. 허 교수는 “부모가 곱셈을 활용해 4열6행으로 줄지어진 동그라미 24개를 금세 세면, 학습지에서 공식을 외우지 않아도 아이는 금방 배운다”고 설명했다.

아들이 수학자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허 교수는 ‘부모가 아는 게 전부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다고 한다. 그는 “내가 아는 수학은 혼자 도서관에 파묻혀 열심히 하는 것인데, 아들이 하는 수학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여러 명이 모여 생각을 나누고, 각자 가진 퍼즐 조각을 끼워맞춰 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