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마지막 레닌 흉상 철거…탈중립·친서방 행보 가속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탈중립'을 선언한 핀란드가 자국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블라디미르 레닌 흉상을 4일(현지시간) 철거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의 국부인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이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이 흉상은 소련의 일부였다가 현재는 에스토니아의 수도가 된 탈린시(市)가 1979년 핀란드 남부도시 콧카에 선사한 것이다.

이후 수십 년간 콧카 시내 광장에 세워져 있었던 이 흉상은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다.

한번은 흉상의 팔 부분에 누군가 붉은 페인트를 칠해 핀란드 정부가 소련 측에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고 현지 일간 헬싱인 사노마트는 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레닌 흉상은 콧카 시내 경관의 일부로 녹아들었고 일부 주민은 친밀감까지 표명해 왔지만, 현지에선 소련에 억압당하던 핀란드의 역사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이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핀란드는 1917년 레닌을 필두로 한 볼셰비키의 정권 탈취를 계기로 옛 러시아 제국에서 내전이 벌어지자 독립을 선언했고, 이후 건국된 소련과 1939∼1940년과 1941∼1944년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러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소련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방과 공산권 모두에 거리를 두는 중립국으로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고, 이를 빗댄 '핀란드화'란 말이 생기기도 했다고 AFP 통신은 설명했다.

그런 까닭에 콧카 시내의 레닌 광장이 철거되자 일부 주민은 축하의 의미로 샴페인을 터뜨렸다.

다만, 다른 한편에선 러시아 국기를 휘두르며 이에 항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올해 77살이라는 마티 레이코넨은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체제 중 하나를 창시한 이의 흉상을 이곳 거리에서 없애는 건 위대한 일"이라면서 "일부는 역사적 기념물로 흉상을 보전해야 한다고 보지만 대다수는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핀란드 여타 지역에서도 소련 시절 세워진 인물상들이 차례로 철거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74년 만에 군사적 중립 노선에서 벗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하며 친서방 행보를 확실히 한 데다,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 때문에 핀란드 내 반러 정서가 강해진 것이 계기가 됐다.

4월에는 서부 도시 투르크 중심가에 있던 레닌 흉상이 철거됐고, 8월에는 1990년 모스크바 시당국이 헬싱키에 기증한 '세계 평화'란 제목의 청동 조각도 철거되는 신세가 됐다고 AFP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