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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혁의 공시 읽어주는 기자

한 달만에 물적분할 철회한 풍산
기업 쪼개기 두고 소액주주 반발
기업 성장 위해선 유연성 확보 필수
👀주목할 만한 공시

풍산은 지난 4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분할 절차를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풍산은 최근 정부와 관계 당국의 물적분할 관련 제도개선 추진 및 일반주주 권익 제고를 위한 주주 보호정책 전개 방향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해 분할에 대해 다시 한번 신중한 검토 및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업 쪼개기 비난 여론…풍산 결국 철회

'기업 쪼개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물적분할로 지배기업은 이득을 보지만 정작 지배기업 주주들은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다. 최근 소액주주들의 반발 움직임에 풍산이 방산 사업부문의 물적분할 결정을 철회했다. 이 소식이 주식시장 전해지자 풍산 주가는 연일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다.

앞서 풍산은 지난달 7일 방산 사업부문을 단순·물적분할 방식으로 분할해 신설회사 '풍산디펜스'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풍산의 방산 부문은 수익성이 높고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 '알짜'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풍산의 전체 매출 중 방위산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에 달한다. 작년 연결 기준 풍산의 매출액은 3조5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방위산업 부문의 매출액은 96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풍산의 법인세 비용 차감 전 순이익은 3068억원이다. 여기서 방위산업 부문이 차지하는 수익비중(1247억원)은 40%를 넘는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물적분할 규제 시행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발표됐다는 주주들의 비판이 커지자 해당 결정을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지난달 4일 상장 기업의 주주가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경우 기업에 주식을 매수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일반주주 권익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풍산은 해당 발표 사흘 후 물적분할 결정을 공시해 꼼수 결정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차이는?

물적분할은 회사의 특정 사업부를 떼어내 별도 법인으로 만들고 이를 기존 회사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기업분할 방식이다. 최근 주가가 바닥을 기면서 지분 인수 등 지배구조 개편에 필요한 비용이 줄어들자, 기업들이 앞다퉈 기업분할에 뛰어들고 있는 것.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 쪼개기가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국내 대기업은 여러 사업 분야가 섞여 있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LG화학도 2차전지부터 치약까지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다 물적분할로 디스카운트를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기업들이 쪼개기 방식으로 물적분할을 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기존 주주는 신설 회사 주식을 배정받지 못한다. 핵심 사업 부문을 뗀 신설 회사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 유치가 가능하지만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이 불가피하다.

반면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 주주들도 신설 회사 지분을 받기 때문에 이런 비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단, 인적분할을 하게 되면 신설되는 회사의 증자나 상장 과정에서 지분율이 낮아지는 단점이 있어 모회사의 경영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기업 분할, 무조건 막는 게 최선일까?

소액주주 입김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이번 풍산의 물적분할 철회가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식 투자자가 늘고, 물적분할 등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빈번했던 게 소액주주들의 입김이 세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기업 쪼개기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유연성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르거나 합칠 수 있어야 다양한 전략을 펼칠 수 있고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조달도 용이하다. 신생기업이나 후발주자는 외부자금 유치 여부에 따라 사업 성패가 갈린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같은 하락장에서 주주들의 이익을 침범하는 행위는 주주들의 박탈감을 더욱 키운다"면서도 "기업 쪼개기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장기적으로 회사의 가치를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