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韓 좌파, 감세나 규제혁파 중 하나는 양보해야
국정감사 무용론에 빠지다가도 의미 있는 정부 통계를 이런 때에나 보니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정책 자료가 그런 것이다. 최근 5년간 급등한 조세부담률이 올해 23.3%에 달했고, 사회보험까지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30.9%로 치솟았다는 내용이다. 재정·예산통인 송 의원이 기획재정부 자료를 종합한 것이다. 재정준칙이 없으면 2040년엔 국가채무가 GDP의 100%를 넘는다는 같은 당 김상훈 의원 경고도 국감의 순기능을 살리는 사례다. 김 의원은 국회예산처에 의뢰해 2060년 국민 1인이 부담할 나랏빚이 1억원 이상이라는 전망도 했다.

국민부담률은 국가 경영의 중요한 잣대지만 정부로서는 불편한 지표다. 정권의 좌우보혁 성향 차원이 아니라 나라 살림을 세금에 기대는 정부의 염치 비슷한 문제다. 아직 본격화된 적은 없지만 조세저항이라도 일어나면 국가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기준이다. 건전재정, 연금개혁을 촉구하는 이면에는 납세 거부, 국적 이탈 같은 조세저항 지뢰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국민부담률 30% 돌파는 하나의 고비요, 전환점이다. 2010년 22.1%, 2016년 24.4%에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부지불식간에 이 선에 와버렸다. 최근 연도의 단기 급등은 용인할 만한 수준인지, 앞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복합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판에 정책을 가장한 포퓰리즘 경쟁이 계속되니 저지선이나 위험선을 정해둘 필요가 있다. 국가채무를 GDP의 60%로 막겠다는 재정준칙과 함께 갈 기준이다. 4대 공적보험 기능과 성격을 볼 때 사실은 조세부담보다 국민부담률을 더 비중 있게 봐야 한다. 하지만 급등하는 국민부담률이 경제 활력을 뺏는다 해서 당장 이 비율을 내리기는 어렵다. 결국은 현 수준에서 억제가 현실적 대안이다. 그렇게 보면 한국의 좌파 그룹도 30% 선에서 일단 만족하며 표 계산의 복지 타령을 접었으면 좋겠다.

광범위한 한국 좌파에 ‘속도 조절’ 권유까지 하려니 다분히 선동적인 반론이 새삼 떠오른다. “그래서 복지 하지 말자는 말인가”라는 주장이다. 이런저런 토론회에서 현금 퍼주기의 부당성, 급증하는 복지 비용과 지속가능 여부, 전달 누수, 미래 세대 부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할 때면 흔히 들어온 비논리적 공격이다. 하지만 필자도, 한경도, 복지를 하지 말자고 한 적이 없다. 선별적·생산적이고 지속가능한 복지로,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자고 강조했을 뿐이다. 건전 재정의 담론장에서도 “그러면 재정의 역할을 부인하는 거냐”라는 감정적 반론이 드물지 않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재정 역할을 부인하겠나. 제대로 쓰자는 것이고, 내 임기만 볼 게 아니라 더 어려운 상황도 감안하자는 것이고, 청년 세대에 과도한 짐을 넘기지 말자는 것이다.

정의당이 기초연금 확대에 제동을 건 것은 그런 점에서 거듭 주목할 만하다. 30만원인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면 8년 뒤엔 연간 12조원이 더 든다는 당연한 지적을 정의당 의원총회에서 들은 것은 하나의 수확이다. 언제나 핵심은 재원 문제이고, 지속가능성 여부다. 한국 사회가 성숙해지려면 이쯤에서 ‘보편적 복지=보편 증세’ 외에는 어렵다는 정도의 담론이 나와야 한다. 서구의 좌우 정파 권력교체와 합종연횡에는 이런 ‘정치적 정직’ 기반의 예측 가능한 정책 거래가 있다. 그 결과 정권이 좌우로 바뀌어도 정책의 스윙 폭이 줄어든다. 자연히 나라가 안정된다.

국가채무 용인선 논쟁만큼이나 국민부담률의 한계선을 두고도 큰 논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대안이 있다.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대대적 규제 혁파를 통한 기업과 개인들의 사업 활성화로 파이를 확 키우면 설령 국민부담률이 조금 더 올라가도 물적·심적으로 감내할 여유가 생긴다. 북유럽 ‘연성·진보 좌파’가 그렇게 가고 있다. 중국이 공산당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변해온 것도 대개 이런 방향이다. 그렇게 파이가 커지고, 나아가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가 의미 있게 쓰이는 게 두루 체감된다면 좌도 우도 목숨 걸 싸움이 줄어든다. 우파부터 “까짓것 더 낼게, 대신 제발 내 사업에 간섭(규제) 좀 하지 마”로 타협선을 삼을 것이다. 한국 좌파가 높은 세율과 규제 중 최소 하나는 내놓을 때가 됐다. 국민부담률에 대한 소모적 논란 피하기는 좌파 진영에 더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