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가 알아 '스맛폰'이 귀화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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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홍 기사심사부장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이는 하이데거다. 모든 인간은 언어 안에 존재한다. 이 땅에선 한국어로 꿈꾸고 한국어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언어는 같은 말을 사용하는 집단의 문화와 역사, 그 표면이다. 그것은 세대를 넘어 유전한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한 분투는 이런 철학적 바탕에 근거했다. 그 후예인 우리는 다국적 언어의 쓰나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티켓을 미리 겟해서 웨이팅 없이 세팅이 됐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로, 외래어 남용을 지적한 예다. 우리말 지킴이가 아니라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극단적 사례이겠지만 외래어 침습은 한국어에 가장 큰 도전이다. 고유어 지킴이들은 한자어 사용까지 문제 삼는다. 우리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외래어는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은 온당한가.
고뿔이라는 말이 있다. 겨울이 오면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광고가 방송을 탔다. 고뿔은 감기에 밀려 죽은 단어다. 감기는 한자어, 고뿔은 순우리말이다. 빵이 포르투갈어 pao에서 왔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가방은 네덜란드 출신이다. 이들은 일본어를 거쳐 우리말에 정착했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보라매, 수라는 몽골이 고향이다. 모두 귀화어다.
2001년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다.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이름을 앞세운다. ‘스마트’, 이 단어가 세계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늠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은 스마트폰을 ‘똑똑(손)전화’로 순화하자고 제안했다. 과연 가능했을까. 결과는 모두가 생각하는 바와 같다.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언어순혈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이미 한국어에 자리 잡은 한자어를 배척하는 것은 어떨까. ‘52% 대 45%.’ 한글학회 <큰사전>의 한자어와 고유어 비중이다. 한자어를 배제하고 우리의 언어 생활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외래어를 우격다짐으로 거부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외래어 유입 자체를 막을 길 없는 세계화 시대다. 막을 수 없다면? 우리말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외래어가 엉덩이를 붙이기 전에 딱 떨어지는 대체어를 마련해 확산해야 한다.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똑똑손전화 꼴이 난다. 이때 창발성이 필요하다. 창발성에 상상력을 더하면 새로운 언어가 탄생한다. ‘편의점’(convenience store) 같은.
모레는 한글날이다. 언어 전쟁에서 힘써 싸우되, 진다면(?) 누가 알겠는가 ‘스맛폰’이 귀화할지.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한 분투는 이런 철학적 바탕에 근거했다. 그 후예인 우리는 다국적 언어의 쓰나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티켓을 미리 겟해서 웨이팅 없이 세팅이 됐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로, 외래어 남용을 지적한 예다. 우리말 지킴이가 아니라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극단적 사례이겠지만 외래어 침습은 한국어에 가장 큰 도전이다. 고유어 지킴이들은 한자어 사용까지 문제 삼는다. 우리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외래어는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은 온당한가.
死語는 자연선택의 결과
놈 촘스키는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고 했다. 언어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멸한다. 우리말을 보존하고 지키자는 명제는 다분히 도덕적이다. 우리말 지킴이들은 죽은 언어조차 되살려내려 애쓴다. 하지만 죽은 말은 다 이유가 있다. ‘자연선택’이다. 다윈 진화론의 요체다. 언어의 일생에도 이 말은 합목적적이다.고뿔이라는 말이 있다. 겨울이 오면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광고가 방송을 탔다. 고뿔은 감기에 밀려 죽은 단어다. 감기는 한자어, 고뿔은 순우리말이다. 빵이 포르투갈어 pao에서 왔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가방은 네덜란드 출신이다. 이들은 일본어를 거쳐 우리말에 정착했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보라매, 수라는 몽골이 고향이다. 모두 귀화어다.
2001년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다.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이름을 앞세운다. ‘스마트’, 이 단어가 세계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늠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은 스마트폰을 ‘똑똑(손)전화’로 순화하자고 제안했다. 과연 가능했을까. 결과는 모두가 생각하는 바와 같다.
창발성으로 대체어 마련해야
문화 이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80년대 젊은이들이 일본풍을 따라 한다고 기성세대가 혀를 끌끌 찼지만 2020년대 K컬처는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로 ‘떼창’을 하고 한글로 문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어가 외국으로 뻗어나가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고 외래어가 우리 생활에 스며드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인가.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언어순혈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이미 한국어에 자리 잡은 한자어를 배척하는 것은 어떨까. ‘52% 대 45%.’ 한글학회 <큰사전>의 한자어와 고유어 비중이다. 한자어를 배제하고 우리의 언어 생활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외래어를 우격다짐으로 거부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외래어 유입 자체를 막을 길 없는 세계화 시대다. 막을 수 없다면? 우리말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외래어가 엉덩이를 붙이기 전에 딱 떨어지는 대체어를 마련해 확산해야 한다.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똑똑손전화 꼴이 난다. 이때 창발성이 필요하다. 창발성에 상상력을 더하면 새로운 언어가 탄생한다. ‘편의점’(convenience store) 같은.
모레는 한글날이다. 언어 전쟁에서 힘써 싸우되, 진다면(?) 누가 알겠는가 ‘스맛폰’이 귀화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