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24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일본 금융시장에서 잇따라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도쿄증시 거래의 70%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일 일본 시장을 등지고 있다. 세계 시장 진출이나 첨단 기술 획득을 위해 일본 기업이 시도하는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은 1년 새 4분의 1토막 났다.

'엔저'가 부메랑으로…日 기업 M&A 64% 줄어
도쿄증권거래소는 2022년 4~9월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1조5281억엔(약 14조8757억원)어치 순매도했다고 7일 발표했다. 2021년 상반기 이후 3개 반기 연속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사들인 일본 주식보다 팔아치운 금액이 더 많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최근 10개 반기 가운데 한 번을 제외하고 줄곧 일본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세가 집중된 9월 말(9월 26~30일)에는 2조엔 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달 22일 재무성과 일본은행이 24년 만에 엔화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자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일본 주식을 팔아치웠다.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주식을 사들이는 경향을 보여왔다. 일본 수출기업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가 시작되면서 엔화 가치가 20% 가까이 떨어진 2012년 10월~2013년 3월 외국인 투자자들은 6조엔어치 일본 주식을 대량으로 순매수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엔저(低)가 일본 기업의 실적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줄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패턴이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엔화 가치 급등을 피해 일본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대거 해외로 이전한 결과 엔저가 순이익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처드 케이 컴제스트애셋매니지먼트 애널리스트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원재료 조달 비용을 급증시키는 엔저는 일본 기업에 역효과”라며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들이 순매수에 나서던 공식이 변했다”고 말했다.

엔저로 인해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 수익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달러 기준인 닛케이225지수도 올 4~9월 20% 넘게 하락했다. 반기 기준으로 2010년 이후 1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닛케이225지수가 올해 표면적으로는 27,000선 안팎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외 투자자 관점에서는 자산 가치가 급감한 셈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