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기반 서체 '프리텐다드' 제작·배포한 디자이너 길형진 씨
"한글 창제 뜻처럼…앱 글꼴도 쓰기 편하게 만들고 싶었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유용할 수 있는 서체를 저만 좋자고 혼자 쓰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
디지털 시스템 디자이너 길형진(26) 씨는 8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글꼴 '프리텐다드'(Pretendard)를 만들게 된 동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길씨는 지난해 6월 오픈소스 글꼴인 '본고딕'과 '인터'(Inter)를 활용해 '프리텐다드'를 제작하고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는 애플과 안드로이드용 앱 운영체제(OS)가 지원하는 기본 서체가 달라 개발 작업을 두 번 해야 했다.

또 이런 기본 서체는 디자인 프로그램에서 한글과 알파벳의 크기 등이 다르게 구현돼 번거로운 조정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에 길씨는 안드로이드 기본 서체 '본고딕'에 애플 기본 서체의 특성을 더하고, 영문 서체 '인터'를 접목해 이 같은 불편함을 해결했다.

화살괄호나 음표·별 등 특수기호를 손수 만들어 미학적인 요소도 더했다.

글꼴 이름에는 '기존의 다른 것을 따라 해 새 기준을 만든다'는 뜻이 담겼다.

프리텐다드는 출시 이후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어엿한 서체로 자리 잡았다.

현재 리멤버, 케이뱅크 등의 앱은 물론 언론사 그래픽 뉴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쓰이고 있다.

글꼴을 내려받을 수 있는 길씨의 블로그에는 감사 댓글이 1천여 개 달렸다.

"한글 창제 뜻처럼…앱 글꼴도 쓰기 편하게 만들고 싶었죠"
서체 디자인에 처음 나선 길씨는 작업을 이어간 8개월 동안 한글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그는 "알파벳과 달리 한글은 조합이 다양해 최소 2천780자를 디자인해야 한다"며 "서체 제작이 어렵지만, 그 다양함이 한글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 결과물로 표현되는 단어가 알파벳보다 압축적인 게 또 다른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프리텐다드가 오픈소스 글꼴 덕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오픈소스란 소프트웨어의 소스와 기본설계 문서 등을 공개해 누구나 해당 소프트웨어를 개선하고 재배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글 창제 이유와 원리를 널리 알려 600년 가까이 누구나 자유롭게 변용할 수 있게 한 훈민정음의 정신을 오픈소스 글꼴 디자이너가 다시 이어받은 셈이다.

길씨는 자신의 글꼴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완전히 새로운 글꼴을 개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보 전달에 특화된 프리텐다드와 달리 '돋움체'처럼 정감 있고 여유를 주는 서체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디지털 서체를 만드는 이의 손글씨는 어떨까.

그는 "슬프게도 제 손글씨 모양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웃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쁜 서체는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모든 서체는 고유한 목소리를 가지고, 그 목소리는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글 서체가 늘어나 사람들이 세상을 더 다채롭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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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뜻처럼…앱 글꼴도 쓰기 편하게 만들고 싶었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