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대교 폭발 사고를 그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거리에 전시된 그림 앞에서 8일(현지 시각) 연인이 입맞춤하고 있다. 사진=연합로이터
크림대교 폭발 사고를 그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거리에 전시된 그림 앞에서 8일(현지 시각) 연인이 입맞춤하고 있다. 사진=연합로이터
러시아가 2014년부터 점령 중인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가 8일(현지 시각) 폭발로 일부 파괴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가 실질과 상징 양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크림대교가 핵심 군사 보급로인데다 크림대교 개통을 정치적으로 십분 이용해 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70세 생일 바로 다음 날 이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다리가 크림에 대한 러시아의 핵심 보급로였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점령했다가 최근 밀려나고 있는 다른 우크라이나 남부 전선에 대한 보급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 다리를 통한 통행에 지장이 생기면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의 능력에 심대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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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측은 올해 2월 러시아 측의 침공을 받은 이래 크림대교가 지닌 전략적·상징적 가치 때문에 이 다리를 파괴하겠다는 위협을 여러 차례 해 왔다. 다만 이번 폭발이 우크라이나 측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앞서 지난 2018년 5월 푸틴 대통령은 이 다리의 개통식을 주재하면서 오렌지색 카마즈 트럭을 직접 몰아 다리를 건너는 이벤트를 한 바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당시 푸틴은 이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 제정 러시아 시절을 포함해 여러 시대에 걸쳐 꿈이었다. 이런 전략적·상징적 가치 때문에 러시아는 이 다리가 공격당할 경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하겠다고 올해 6월 공언하기도 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이 최근 잇따른 사태로 약화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강력한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CNN은 "(푸틴 입장에서)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이 단계에서 내키지 않는 일일 테고, 더 큰 도박을 하는 것이 더 쉬운 길처럼 보일 수도 있다"며 푸틴이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판을 더욱 키울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 시도나 푸틴 정권 자체가 '완전한 붕괴'를 맞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크림대교 폭발 사고를 놓고 우크라이나의 조롱과 러시아의 반발이 오갔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8일 트위터에 크림대교의 화염과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생일 축하곡을 불렀던 흑백영화 영상을 나란히 올리고 "좋은 아침입니다. 우크라이나"라고 적었다. 우크라이나 우정본부는 "크림대교, 정확하게는 크림대교였던 것의 기념우표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민들은 크림대교 폭발을 그려 거리에 전시된 대형 그림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기뻐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폭발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를 3명으로 파악했다. 러시아 정부는 크림대교 폭발 사고의 배후를 우크라이나군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 정부 인사들은 환호하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테러리스트'라고 비판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