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젊은 날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지 않았던 그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고 웃음 짓기도 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생일대의 로맨스를 경험하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영원 같은 그 순간의 설렘을 가지고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나게 되는 설렘의 순간을 놓치지 말고 용기를 발휘해 삶을 뜨겁게 달궈보자. <영화 줄거리 요약>
동유럽 횡단 열차에서 셀린(줄리 델피 분)은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난 후 가을 학기 개강에 맞춰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녀는 우연히 유럽여행을 왔다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는 제시(에단 호크 분)라는 미국 청년을 만나게 된다. 가벼운 대화에서 시작한 둘의 사이는 어느새 친구로 진화되고 삶의 철학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르면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진다. 드디어 기차가 비엔나에 정차하자 제시는 새로운 운명을 시작할 용기를 낸다. <관전 포인트>
A. 두 사람이 용기를 내는 계기는?
기차에서 진솔한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서로는 아쉬움과 애틋함이 깊어진다. 비엔나 역에 내린 제시는 용기를 내어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자신과 시간을 같이 보낼 것을 제의하고 셀린도 흔쾌히 받아들인다. 비엔나에 내리는 순간 둘은 국적도 다르고 전혀 모르는 이방인인 미국 남자와 유럽 여자와의 만남이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들어온 것처럼 둘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점점 달콤한 사랑의 묘약을 들이킨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된다.
B. 비엔나에서의 하루는?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따라 내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운명적인 직감에 이끌린 두 사람은 비엔나 도보여행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도로 위를 누비는 버스, 열세 살에 죽음을 맞게 된 소녀가 잠들어 있는 무덤에서부터 놀이공원, 술집 그리고 현지인에게서 연극 초대권도 받게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두 사람은 여행의 여정에서 인생, 종교, 페미니즘, 인연, 섹스, 사랑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들을 도마 위에 올리고 떠들어대며 거침없이 사고하고 뱉어낸다. 두 사람의 진솔하고 감각적인 생각은 청춘이기에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이 더욱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C. 두 사람이 교감하게 되는 과정은?
두 사람의 이끌림은 서로 잘 통한다는 것, 바로 교감에 있었다. 얘기해 보니 어떤 이야기든 막힘이 없고 술술 풀려나가며 자석에 이끌리듯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들은 레코드숍에 들러 비좁은 감상실에서 흐르는 노래에, 시작된 사랑의 감정이 들킬까 조심스레 서로를 훔쳐보면서 심장은 쿵쾅거리고 숨이 가빠지는 교감을 맛보게 된다. 두 사람은 손가락으로 하는 전화 놀이를 통해 상대에게 느낀 좋은 감정들을 진솔하게 표현하면서 하루라는 시간이 이들에게 사랑에 빠지기 충분했음을 보여준다.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애초의 서먹함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두 사람은 한 달을 같이 여행한 연인 사이처럼 깊어지게 된다.
D.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이별은?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둘은 이별한다. 셀린의 질문이었던 "왜 관계가 영원해야 하지?"의 대답대신 제시는 [모든 시계가 울리기 시작한다. 오!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시간이여, 번민 속에 삶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시간이 승리하리 내일 또는 오늘]이라는 W.H 오덴의 시를 들려주며 이별의 아쉬움과 함께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염원한다.
E. 16년간에 걸쳐 완성된 영화의 시리즈는?
@2편<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 비엔나에서의 꿈같은 하루를 보낸 이후 9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시는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파리에서 우연히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 셀림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극적인 재회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상실 가득한 현재의 삶에 서로가 위로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3편<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운명적으로 시작된 사랑이 18년이 흘렀고 생활의 무게로 지난날의 두근거림은 옅어졌지만 사랑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면서 저녁노을의 의미를 깨달은 그들은 사랑은 내일 아침이면 다시 떠오를 태양처럼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결코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에필로그>
기차 안에서의 운명적 만남을 낭비하지 않았기에 그 순간 안에 깃든 일생일대의 로맨스를 만들 수 있었듯이 우리도 내 삶의 순간이 나를 붙잡을 때 용기를 내어 절대 사랑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현대 문명의 발달은 지나친 개인 이기주의와 귀차니즘을 만들었고 사랑을 불편한 것으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슬픈 현실은 무척이나 안타깝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들이 좀 더 사랑받기 위한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설렘 가득한 행복을 위해 미지의 사랑을 싣고 달리는 기차에 거침없이 올라타보자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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