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의 '고예스카스'…영원한 소년, 건반 위를 자유롭게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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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예술의전당서 독주회…스페인 작곡가 피아노 모음곡 연주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 '백건우와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를 열었다.
프로그램은 국내 관객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인 '고예스카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가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1911년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이다.
고난도의 기교와 다채로운 표현력, 회화와 음악을 연결하는 상상력을 요구하는 곡으로, 실제 공연에서 연주되는 일이 드문 작품이기도 하다.
백건우가 연주한 '고예스카스' 모음곡 는 근래 보지 못한 높은 밀도와 완결성을 갖췄다.
단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된 공연이었지만 여기에 다른 작품을 더 섞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앙코르 연주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백건우는 이날도 앙코르 없이 공연을 마쳤다.
앙코르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운 일일지 모르겠으나 이날 공연에서는 특히 앙코르 연주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7곡으로 구성된 '고예스카스' 모음곡은 모두 춤의 역동성과 변화무쌍한 환상, 천진한 노래의 음조, 오페라와 같은 극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백건우는 진중한 태도로 연주하는 '건반 위의 구도자'답게 기교를 부각하기보다는 한 음 한 음에 진솔한 고백적 어조를 담아냈다.
마치 기타를 연주하듯, 피아노를 가슴에 안고 연주하는 듯했다.
첫 곡 '사랑의 속삭임'은 스페인의 민속춤 '토나디야'를 바탕으로 작곡한 기교적인 작품이다.
아주 많은 장식적인 꾸밈음이 쉴 새 없이 굴곡을 만들어내는 고난도 곡이지만, 백건우는 그러한 기교적 인상을 지운 채 오히려 자유분방한 움직임과 천진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왼손과 오른손에서 중심선율과 장식음이 교차 되면서 뒤섞이다 분리되기를 반복하는 데서는 스페인의 기타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어 연주된 '창가의 대화'는 밤의 정서를 담은 곡이다.
백건우는 탁월한 표현력으로 애틋한 연심과 엄숙한 서약, 열정적인 고백 등으로 느껴지는 무언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세 번째 곡 '등불 옆의 판당고'는 그라나도스가 악보에 "노래와 춤의 장면"이라고 설명한 작품이다.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생명력 있는 에너지가 인상적이다.
백건우는 절도 있게 끊어지는 리듬과 매끄럽게 이어지는 선율선을 대비, 조화시키며 민속적 에너지 안에 흐르는 품위를 훌륭하게 전달했다.
민속성과 품위, 스페인 출신 작곡가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등이 추구한 스페인의 혼이 더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백건우는 '고예스카스' 모음곡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네 번째 곡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게일'을 기점으로 극적인 에너지를 증폭시켜나갔다.
이 작품은 녹턴 풍의 멜랑콜리한 정서가 지배적이고 노래를 부르는 듯한 서정성도 돋보인다.
그러나 완전한 '노래'라고 하기엔 안정적인 대칭적 구조를 벗어나 있다.
여기에 포인트가 되는 장식음이 끼어들어 색채를 자꾸 바꾼다.
백건우는 이런 지점들을 포착해 극적인 폭을 심화시켰다.
쉽게 해소되지 않는 불안과 절절한 고백이 공존하는 처녀의 독백 뒤에는 더없이 반짝이는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가 야속하리만큼 천진하게 반짝였다.
전체 연작에서 가장 장대한 다섯 번째 곡 '사랑과 죽음. 발라드'는 네 번째 곡의 주제 요소를 이어받아 증폭시킨다.
백건우는 네 번째 곡이 슬픔이라면, 다섯 번째 곡은 고통의 몸부림으로 대비시켜 연주했다.
둔중한 화음의 무게와 서정적인 선율의 대비, 주선율의 무게를 뚫고 나오는 능수능란한 꾸밈음의 대비는 하나같이 생명력이 넘쳤다.
여섯 번째 곡의 부제는 '에필로그. 유령의 세레나데'다.
압도적인 앞의 두 곡에 비해 묻히는 감이 있지만, 백건우는 이 곡만의 독자적인 매력을 살려 마지막 곡으로 나아가는 점증적 과정을 완성했다.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연상시키는 음형이 그로테스크한 성격의 선율, 화성과 시종일관 어우러지는데, 백건우의 연주는 그 울림과 색채에 쉼 없이 변화를 가져갔다.
이러한 연주 덕에 종종 가볍고 유머러스한 곡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이 곡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백건우는 마지막 곡에서 그간 보여주지 않고 아껴둔 그의 자유와 에너지, 여전한 호기심과 마를 줄 모르는 음악에 대한 천진한 사랑을 모두 쏟아냈다.
네 번째 곡부터 음악적 긴장감을 타고 이어진, 흥이 한껏 오른 춤사위이자 신명의 두들김이었다.
모인 관객들은 일흔여섯 살의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여전히 건반 위를 자유로이 나는 소년임을 보았다.
연주자의 진심이 작품의 진가를 만나게 한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한 백발의 피아니스트에게 관객석은 존경의 박수로 화답했다.
/연합뉴스
프로그램은 국내 관객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인 '고예스카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가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1911년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이다.
고난도의 기교와 다채로운 표현력, 회화와 음악을 연결하는 상상력을 요구하는 곡으로, 실제 공연에서 연주되는 일이 드문 작품이기도 하다.
백건우가 연주한 '고예스카스' 모음곡 는 근래 보지 못한 높은 밀도와 완결성을 갖췄다.
단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된 공연이었지만 여기에 다른 작품을 더 섞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앙코르 연주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백건우는 이날도 앙코르 없이 공연을 마쳤다.
앙코르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운 일일지 모르겠으나 이날 공연에서는 특히 앙코르 연주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7곡으로 구성된 '고예스카스' 모음곡은 모두 춤의 역동성과 변화무쌍한 환상, 천진한 노래의 음조, 오페라와 같은 극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백건우는 진중한 태도로 연주하는 '건반 위의 구도자'답게 기교를 부각하기보다는 한 음 한 음에 진솔한 고백적 어조를 담아냈다.
마치 기타를 연주하듯, 피아노를 가슴에 안고 연주하는 듯했다.
첫 곡 '사랑의 속삭임'은 스페인의 민속춤 '토나디야'를 바탕으로 작곡한 기교적인 작품이다.
아주 많은 장식적인 꾸밈음이 쉴 새 없이 굴곡을 만들어내는 고난도 곡이지만, 백건우는 그러한 기교적 인상을 지운 채 오히려 자유분방한 움직임과 천진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왼손과 오른손에서 중심선율과 장식음이 교차 되면서 뒤섞이다 분리되기를 반복하는 데서는 스페인의 기타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어 연주된 '창가의 대화'는 밤의 정서를 담은 곡이다.
백건우는 탁월한 표현력으로 애틋한 연심과 엄숙한 서약, 열정적인 고백 등으로 느껴지는 무언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세 번째 곡 '등불 옆의 판당고'는 그라나도스가 악보에 "노래와 춤의 장면"이라고 설명한 작품이다.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생명력 있는 에너지가 인상적이다.
백건우는 절도 있게 끊어지는 리듬과 매끄럽게 이어지는 선율선을 대비, 조화시키며 민속적 에너지 안에 흐르는 품위를 훌륭하게 전달했다.
민속성과 품위, 스페인 출신 작곡가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등이 추구한 스페인의 혼이 더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백건우는 '고예스카스' 모음곡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네 번째 곡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게일'을 기점으로 극적인 에너지를 증폭시켜나갔다.
이 작품은 녹턴 풍의 멜랑콜리한 정서가 지배적이고 노래를 부르는 듯한 서정성도 돋보인다.
그러나 완전한 '노래'라고 하기엔 안정적인 대칭적 구조를 벗어나 있다.
여기에 포인트가 되는 장식음이 끼어들어 색채를 자꾸 바꾼다.
백건우는 이런 지점들을 포착해 극적인 폭을 심화시켰다.
쉽게 해소되지 않는 불안과 절절한 고백이 공존하는 처녀의 독백 뒤에는 더없이 반짝이는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가 야속하리만큼 천진하게 반짝였다.
전체 연작에서 가장 장대한 다섯 번째 곡 '사랑과 죽음. 발라드'는 네 번째 곡의 주제 요소를 이어받아 증폭시킨다.
백건우는 네 번째 곡이 슬픔이라면, 다섯 번째 곡은 고통의 몸부림으로 대비시켜 연주했다.
둔중한 화음의 무게와 서정적인 선율의 대비, 주선율의 무게를 뚫고 나오는 능수능란한 꾸밈음의 대비는 하나같이 생명력이 넘쳤다.
여섯 번째 곡의 부제는 '에필로그. 유령의 세레나데'다.
압도적인 앞의 두 곡에 비해 묻히는 감이 있지만, 백건우는 이 곡만의 독자적인 매력을 살려 마지막 곡으로 나아가는 점증적 과정을 완성했다.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연상시키는 음형이 그로테스크한 성격의 선율, 화성과 시종일관 어우러지는데, 백건우의 연주는 그 울림과 색채에 쉼 없이 변화를 가져갔다.
이러한 연주 덕에 종종 가볍고 유머러스한 곡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이 곡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백건우는 마지막 곡에서 그간 보여주지 않고 아껴둔 그의 자유와 에너지, 여전한 호기심과 마를 줄 모르는 음악에 대한 천진한 사랑을 모두 쏟아냈다.
네 번째 곡부터 음악적 긴장감을 타고 이어진, 흥이 한껏 오른 춤사위이자 신명의 두들김이었다.
모인 관객들은 일흔여섯 살의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여전히 건반 위를 자유로이 나는 소년임을 보았다.
연주자의 진심이 작품의 진가를 만나게 한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한 백발의 피아니스트에게 관객석은 존경의 박수로 화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