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지난 7일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판매를 금지하고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칩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다만 미국 기업이 아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외국 기업에 대해선 개별 심사를 통해 수출 제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당장 직접적 피해는 피했지만 심사 지연, 기술 유출 우려 등 불안 요인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상무부는 미국 기업이 특정 성능 이상 칩을 만드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려면 허가를 받도록 했다. 허가 대상은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핀펫(FinFET) 기술을 사용한 로직칩(16㎚ 내지 14㎚) 등 고성능 반도체다. 상무부는 또 반도체 장비뿐 아니라 AI와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고성능 반도체칩을 대중 수출 제한 대상에 포함하고, 기존 반도체 장비의 보수나 부품 교체 때도 미국 정부의 심사를 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한국 반도체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이 미국 정부에 보고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무부는 반도체 개발·생산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거나 기술을 쓴 경우 수출 통제 등 제재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중국에 생산시설을 가진 외국 기업에 대해선 “미국 기업과 달리 개별 심사로 수출 제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한국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낸드플래시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SK하이닉스가 D램 공장, 후공정 공장, 낸드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수출 규제 대상인 첨단 컴퓨팅칩은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아 단기적 영향은 없고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제품은 규제 대상 슈퍼컴퓨터가 극소수여서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에서 가동 중인 SK하이닉스 우시 공장, 삼성전자 시안공장 등은 중국 기업과는 달리 사안별 검토 대상으로 분류돼 장비 공급에 큰 지장은 없을 전망”이라고 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은 각국 정부와 협의해 중국 공장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미국의 개별 허가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절차와 서류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이지훈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