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 기업들이 ‘킹(king)달러’의 부메랑을 맞고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달러 강세가 미국 주요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 매출에 타격을 주고 있어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 중인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정책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강달러 현상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산 제품 가격은 떨어지고 미국산 상품의 수출 가격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명 가전업체 월풀이 강달러로 매출 급감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WSJ는 소개했다. 월풀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에서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급감했다. 농기구 제조업체인 애그코도 2분기 해외 매출이 8.5% 감소했다.

글로벌 리서치업체인 RBC캐피털마켓에 따르면 올해 3M 매출은 5.1%, 에어컨 제조사인 캐리어는 3.4%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너럴일렉트릭(GE) 매출도 2%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들은 특히 미국 제조 기업이 자국 내에서 생산 능력을 키우는 시점에 강달러 현상에 직면한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코로나19로 해외 공급망이 불안정해지자 미국 내 신규 공장을 짓고 생산 설비를 늘려왔다.

강달러는 미국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지속해서 리쇼어링 관련법을 통과시키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 미국 내 반도체 사업 활성화를 위해 500억달러(약 69조5000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산업 육성법(CHIPS)’에 서명했다. 같은 달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의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강달러 현상이 계속되면 미국에서 제조한 물건보다 수입품 가격이 더 저렴해질 수 있다. 미국 기업은 정부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많이 준다고 해도 환율 리스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미국 기업들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는 단체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의 해리 모저 회장은 “강달러가 미국 기업을 쇠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중앙은행(Fed)이 내년까지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돼 달러 가치가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올 들어서만 17%가량 올랐다. 달러인덱스는 지난해 말 95.7 수준이었지만 지난 7일 112.68을 기록했다. 지금 같은 추세대로라면 2001년 후 처음으로 120을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다. 네덜란드 금융회사 ING는 최근 “달러인덱스가 별다른 저항 없이 120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