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설움 견디며 국산화 성공했는데…'KTX 신화' 위기 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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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칫밥 먹으며 일군 KTX 신화
'떼제베' 이긴지 17년 만 '위기'
'떼제베' 이긴지 17년 만 '위기'
한국고속철도(KTX)와 수서고속철도(SRT) 등 국내 고속철도차량 제작에 스페인, 일본 기업이 뛰어들면서 지난했던 고속철 기술 국산화 과정이 새삼 재주목 받고 있다. 이번에 국내 고속철 시장에 뛰어드는 새로운 경쟁자는 스페인 탈고(TALGO)와 일본 도시바다. 고속철도 기술 국산화 이후 26년, 출범 당시 기술을 이전받은 프랑스 알스톰을 2005년 수주전에서 물리친 지 17년 만에 해외와 경쟁하는 셈이다.
국내 철도업계는 크게 긴장하고 있다. 외국 경쟁자가 국내 기업과 팀을 이뤘기 때문이다. 국내 중견 철도차량 업체인 우진산전이 스페인 탈고, 일본 도시바와 지난 6월 기술협력 계약 후 컨소시엄을 이뤄 이번 입찰에 참여한다.
탈고와 도시바가 우진산전의 기술협력 제안에 응한 것은 앞으로 국내 시장에서 줄줄이 발주가 예정돼 있어서다. 동력 집중식 차량 위주였던 KTX와 SRT는 향후 고가의 동력 분산식 차량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현대로템과 국내 철도 부품 업체들은 2007년부터 동력 분산식 연구개발에 매진해 지난해 1월 첫 결과물인 KTX-이음을 내놨다. 1995년 동력 집중식 개발 시작부터 따지면 국산화에 26년이 걸린 셈이다.
알스톰 기술진의 텃새는 상상을 초월했다. 고속차량을 제작하려면 기본적으로 설계 기술을 체득해야 했지만 알스톰은 단순 조립 제작 기술만 공개했다. 국내 기술진을 무시하는 듯한 불성실한 태도는 덤이었다.
현지에서 직면한 최대 고비는 상세 부품표의 부재였다. 알스톰이 제작한 고속차량 설계 도면을 검토하기 위해 최소한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파악해야 했지만 알스톰은 부품을 판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코드에서부터 부품설명, 사진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당시 교육에 참여했던 한 기술진은 “교육을 받고 있는 데도 부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기술진은 교육 중 간접적으로 접한 자료들을 모두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7cm 두께 바인더 총 4권 분량의 자체 부품표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특히 알스톰 고속차량이자 KTX-1의 모델이기도 했던 떼제베(TGV)와 기술적 차별화를 두기 위해 차체를 이루는 주요 요소들을 철이 아닌 알루미늄 합금으로 대체하는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수반돼야 했다. 기술진들은 2002년 월드컵을 공장에서 TV로 지켜보며 꼭 국가대표팀처럼 '꿈은 이루어진다'는 슬로건을 현실화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마침내 6년 간의 개발을 끝으로 4만개의 부품이 하나로 연결된 1편성 7량짜리 고속시험차량 G7이 2002년 8월 첫 시험구동에 성공했다. 하지만 알스톰은 G7을 한국의 독자기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코레일이 발주한 'KTX-산천' 사업에도 경쟁자로 뛰어드는 등 한국에서의 철도 주도권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2005년 12월 현대로템은 코레일이 신규 발주한 KTX-Ⅱ(現 KTX-산천) 100량 경쟁 입찰에서 KTX-Ⅰ을 납품했던 알스톰의 한국법인인 유코레일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형 고속철도 기술의 힘을 입증한 날이었다.
이 같은 노력의 시간 덕분에 현대로템이 주축이 된 한국은 기술력에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국내 업계가 긴장하는 것은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국내 고속철도는 ‘최저가 입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1차 평가에서 기술력을 평가하지만 이를 통과한 이후에는 동등한 입장에서 가격만으로 평가받는다는 게 철도업계 설명이다.
해외 컨소시엄이 값이 비교적 싼 외국산 부품을 사용하면 국내 업계가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탈고 컨소시엄은 보고서에서 “주요 장치는 납품 실적을 가진 국내외 제품을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철도 부품업계는 “국내 부품과 호환성이 없는 탈고가 차량을 제작하면 외국산 부품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와 국내 업체의 접점이 없는 상황에서 명시된 ‘국내외 제품’은 사실상 외산 부품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철도부품산업비상대책위원회는 “기술 이전 상대인 프랑스 알스톰으로부터 설움을 받으면서도 세계 네 번째 고속철도 상용화를 이뤄냈다”며 “애써 개발한 국산 기술이 퇴색되지 않도록 조처해달라”고 촉구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해외사 진입하는 韓 고속철 시장
11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코레일은 KTX 노선에 투입될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EMU-320 136량의 입찰공고를 이르면 이달 말께 낼 계획이다. 총 7600억원 규모 사업이다.국내 철도업계는 크게 긴장하고 있다. 외국 경쟁자가 국내 기업과 팀을 이뤘기 때문이다. 국내 중견 철도차량 업체인 우진산전이 스페인 탈고, 일본 도시바와 지난 6월 기술협력 계약 후 컨소시엄을 이뤄 이번 입찰에 참여한다.
탈고와 도시바가 우진산전의 기술협력 제안에 응한 것은 앞으로 국내 시장에서 줄줄이 발주가 예정돼 있어서다. 동력 집중식 차량 위주였던 KTX와 SRT는 향후 고가의 동력 분산식 차량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현대로템과 국내 철도 부품 업체들은 2007년부터 동력 분산식 연구개발에 매진해 지난해 1월 첫 결과물인 KTX-이음을 내놨다. 1995년 동력 집중식 개발 시작부터 따지면 국산화에 26년이 걸린 셈이다.
○텃세·설움 아래 佛서 기술이전
KTX와 SRT 열차를 두고 해외와 경쟁하게 되면서 토종 고속차량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89년 정부는 고속철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한국은 고속철 기술이 전무한 ‘불모지’였던 터라 알스톰과 시속 300km급 고속차량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이후 국내 기술진들은 1995년 프랑스로 떠나 동력차와 객차, 대차 등 알스톰의 3개 공장에서 고속차량 제작을 위한 수련을 받았다.알스톰 기술진의 텃새는 상상을 초월했다. 고속차량을 제작하려면 기본적으로 설계 기술을 체득해야 했지만 알스톰은 단순 조립 제작 기술만 공개했다. 국내 기술진을 무시하는 듯한 불성실한 태도는 덤이었다.
현지에서 직면한 최대 고비는 상세 부품표의 부재였다. 알스톰이 제작한 고속차량 설계 도면을 검토하기 위해 최소한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파악해야 했지만 알스톰은 부품을 판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코드에서부터 부품설명, 사진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당시 교육에 참여했던 한 기술진은 “교육을 받고 있는 데도 부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기술진은 교육 중 간접적으로 접한 자료들을 모두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7cm 두께 바인더 총 4권 분량의 자체 부품표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돌아와서도 밤낮 없이 양산 개발
고생 끝에 '유학길'에서 돌아온 기술진들은 1996년 12월 당시 건설교통부 주관으로 추진된 ‘한국형 고속차량 G7 개발 프로젝트’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기술을 이전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설계 기술부터 제작, 구매까지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프로젝트는 시작됐다.특히 알스톰 고속차량이자 KTX-1의 모델이기도 했던 떼제베(TGV)와 기술적 차별화를 두기 위해 차체를 이루는 주요 요소들을 철이 아닌 알루미늄 합금으로 대체하는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수반돼야 했다. 기술진들은 2002년 월드컵을 공장에서 TV로 지켜보며 꼭 국가대표팀처럼 '꿈은 이루어진다'는 슬로건을 현실화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마침내 6년 간의 개발을 끝으로 4만개의 부품이 하나로 연결된 1편성 7량짜리 고속시험차량 G7이 2002년 8월 첫 시험구동에 성공했다. 하지만 알스톰은 G7을 한국의 독자기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코레일이 발주한 'KTX-산천' 사업에도 경쟁자로 뛰어드는 등 한국에서의 철도 주도권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2005년 12월 현대로템은 코레일이 신규 발주한 KTX-Ⅱ(現 KTX-산천) 100량 경쟁 입찰에서 KTX-Ⅰ을 납품했던 알스톰의 한국법인인 유코레일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형 고속철도 기술의 힘을 입증한 날이었다.
○가격에서 해외에 밀릴 가능성도
이 같은 노력의 시간 덕분에 현대로템이 주축이 된 한국은 기술력에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국내 업계가 긴장하는 것은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국내 고속철도는 ‘최저가 입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1차 평가에서 기술력을 평가하지만 이를 통과한 이후에는 동등한 입장에서 가격만으로 평가받는다는 게 철도업계 설명이다.
해외 컨소시엄이 값이 비교적 싼 외국산 부품을 사용하면 국내 업계가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탈고 컨소시엄은 보고서에서 “주요 장치는 납품 실적을 가진 국내외 제품을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철도 부품업계는 “국내 부품과 호환성이 없는 탈고가 차량을 제작하면 외국산 부품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와 국내 업체의 접점이 없는 상황에서 명시된 ‘국내외 제품’은 사실상 외산 부품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철도부품산업비상대책위원회는 “기술 이전 상대인 프랑스 알스톰으로부터 설움을 받으면서도 세계 네 번째 고속철도 상용화를 이뤄냈다”며 “애써 개발한 국산 기술이 퇴색되지 않도록 조처해달라”고 촉구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