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6월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22 확대경영회의’에서 강연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6월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22 확대경영회의’에서 강연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SK그룹 계열사 SK이노베이션이 13일 창사 60주년을 맞는다. 1962년 대한석유공사로 출범해 SK그룹에 인수된 후 60년이 지난 것이다. 최근엔 창사 60주년을 맞아 핵심 사업장이 있는 울산에 넷제로(Net Zero) 의지를 담은 ‘SK 울산 행복의 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SK그룹은 녹록지 않은 경영 여건을 연구개발(R&D) 혁신을 통해 극복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룹 주력사업으로 떠오른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 분야 R&D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설명이다.

SK그룹은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R&D 투자를 확대하며 성장 기반을 닦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하이닉스는 적자기업으로 생존도 불투명했다. 인수를 놓고 경제계 안팎의 우려도 컸다. 하지만 최 회장은 “하이닉스를 조속히 정상화한 직후 질적 성장을 이뤄 국가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며 “회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최태원 회장
최태원 회장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직후 투자를 늘려나갔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반도체 기업 상당수가 투자를 10%가량 줄인 것과 상반된 행보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전년 대비 10% 늘어난 3조9000억원의 시설 투자를 단행했다. 2018년에는 사상 최대인 연간 17조원을 투자했다.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인 연구개발비는 인수 이전인 2011년 8340억원에서 2013년 1조1440억원, 2016년 2조970억원, 2019년 3조1890억원으로 꾸준히 증액했다.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증설을 바탕으로 2018년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40조4000억원, 20조8000억원을 거뒀다. 역대 최대 실적이다. 사상 최대 매출 행진은 이어졌다. 2021년 43조원으로 연간 최대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SK는 R&D를 바탕으로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SK는 경기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다. 이곳에는 국내외 50개 이상 협력 업체가 참여할 예정이다. 협력 업체와 R&D를 공동으로 추진하며 반도체 기술력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전기차 배터리 투자도 늘려가고 있다. SK온은 고(高)니켈 배터리 기술을 바탕으로 성능이 우수한 데다 안전성을 갖춘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니켈 비중이 높아지면 주행거리가 길어진다. 이 회사는 니켈 비중을 80% 수준으로 높인 ‘NCM8 배터리’를 2016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2018년에는 이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전기차에 적용했다.

니켈 비중을 90%로 높인 ‘NCM9 배터리’도 2019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배터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두 개나 받았다. NCM9 배터리는 SK온의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해 포드의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에 장착되고 있다. 픽업트럭에 적용해도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배터리인 점을 인정받은 결과다.

SK온은 니켈 비중을 94%로 높인 배터리를 2025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니켈 비중을 98%로 확대한 초(超)하이 니켈 배터리도 연구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배터리 팩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독자기술도 개발했다. 배터리 셀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주변 셀로 열이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SK온이 제작한 E-팩은 열 확산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만큼 화재 발생 가능성을 크게 낮췄다. 자체 실험 결과 배터리 셀에 불이 붙은 뒤 약 30분 만에 화재가 멈췄고, 배터리가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열 확산 안전성’ 기술을 확보하려면 배터리에 별도 부품을 넣어야 한다. 그만큼 배터리 셀 공간이 좁아져 에너지 밀도가 낮아지는 동시에 가격이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SK온이 개발한 배터리 팩 기술은 열 확산을 차단하는 동시에 부품 수를 줄여 공간 효율을 높였다. 가격도 낮출 수 있어 향후 배터리 시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 백신 국산화에 성공한 SK그룹은 40여 년 전부터 바이오와 제약을 미래 성장 분야로 선정해 역량을 쏟았다. SK그룹은 1987년 선경인더스트리에 생명과학연구실을 설립한 뒤 합성신약, 천연물신약, 제제, 바이오 등 4개 분야로 나눠 연구에 나섰다. 연구실은 1989년 연구소로 확대된 뒤 위암 치료 신약 개발을 1호 과제로 삼아 10년을 연구한 끝에 1999년 3세대 백금착제 항암제 ‘선플라’를 개발했다. ‘선플라’는 한국 근대의약이 시작된 지 100여년 만에 한국을 신약주권 국가로 만들었다.

선플라 이후 SK는 2001년 국내 1호 천연물 신약 ‘조인스’(관절염 치료제), 2007년 신약 ‘엠빅스’(발기부전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국내 35개 합성신약 중 두 개를 보유한 기업이 됐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가세하면서 SK그룹의 백신 연구개발 역량은 배가됐다. 최 부회장은 2018년 SK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했고 연구개발에 집중했다.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이 지원한 코로나19 개발 연구지원금을 바탕으로 백신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6월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토종 1호 코로나19 백신인 스카이코비원멀티주의 품목허가를 획득한 바 있다.

최태원 회장도 신약 개발에 주력했다. 최 회장은 SK바이오팜을 설립해 2019년 수면장애 신약 ‘수노시’와 뇌전증신약 ‘엑스코프리’ 등 신약 두 개를 개발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국내 기업 가운데 신약후보 물질 발굴과 임상, FDA 승인 등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기업은 SK가 유일하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