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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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 패배가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여당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했던 문재인 정부의 외교전략이 '심판'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부족한 외교 역량이 지난 영·미·캐 순방 이후 다시 한번 '참사'를 낳았다는 반응이다.

반면 정부에서는 이번 낙선이 특정 정권의 정치적 '어젠다'보다는, 지나치게 많은 선거를 준비하면서 표가 분산된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5전 전승 달리던 한국...6번째 도전서 고배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치러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한국은 123표를 얻어 아시아 국가 중 5위에 그쳤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총 47개의 이사국으로 구성되는데, 아시아에서는 득표순으로 4개국에 자리가 배정된다. 방글라데시(160표), 몰디브(154표), 베트남(145표), 키르기스스탄(126표)이 한국에 앞섰다.

한국은 유엔 가입 후 총 6차례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 도전했다. 이번 선거 전까지는 매번 당선에 성공해 지난 2006~2008년, 2008~2011년, 2013~2015년, 2016~2018년, 2020~2022년 이사국을 맡았었다.

이번 패배를 둘러싸고 여당에서는 '문재인 정부 책임론'이 제기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임 실패는 예고된 일이었다"며 "북한 손 한번 잡아보겠다고 인권과 자유의 연대를 내팽겨친 결과"라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북한 인권 외면 사례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불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시킨 대북전단금지법, 북한 주민 강제 북송 사건 등을 언급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문재인 정권은 북한 인권 범죄를 규탄하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과 관련, 4년 연속 공동제안국에 불참했다"며 "북한의 심기 보좌'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권의 외교 결과가 국제적 망신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이것이 진짜 '외교참사"라고 비난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낙선으로 대한민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인권 유린이나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소수민족 탄압 같은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잃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 "낙선, 윤석열 외교의 처참한 성적표"


반면 야권에서는 책임의 화살을 윤석열 정부로 돌리고 있다. 인권과 자유를 강조해왔던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기조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이번 낙선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3권 분립과 인권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로 인해 인사와 외교, 군사, 안보 모든 분야에서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유엔 인권이사회 선거 낙선으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새 정부는 자유와 인권, 법치에 기반한 가치를 외교 정책 전면에 내세웠지만 정작 결과는 그 반대의 모습"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낙선을 자신들의 철학과 외교에 대한 처참한 성적표로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국제기구 선거만 14개 출마...과욕이 독 됐나


정치권의 공방과 달리 외교가에서는 이번 패배가 정치적 요인보다는 잘못된 선거전략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가에 따르면 올해 한국은 중점선거 4개, 중요선거 6개, 일반선거 4개 등 14개의 국제기구 선거 출마를 준비했다. 작년에는 10개, 재작년에는 11개에 나섰던 것에 비해 많은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같은 적극적인 출마는 지지세의 분산 및 이에 따른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통상 국제기구선거에서 국가들은 각자가 출마한 선거에서 한표씩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한다. 한국이 주요 선거에서 행사할 수 있는 표가 한정된 상황에서 너무 많은 선거에 도전을 하다보니 각 선거에서 확보한 지지세가 이전보다 적었다는 설명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올해 상반기에만 중점 선거 2개, 주요 선거 4개를 치렀고 10월에만 3개의 선거를 치렀다"며 "올해 치른 선거 중 13번째로 치른 인권이사회 선거는 올해 하반기에야 본격적으로 선거 교섭을 개시했는데 구조적으로 상반기에 인권이사회 선거에 전력을 쏟을 수 없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특정 정부의 외교 기조로 국제 사회의 외면을 받았다는 주장도 실제 선거의 면면을 살펴보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맞붙은 방글라데시와 키르기스스탄은 종교의 자유나 여성인권 등 기본적인 인권의제에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온 국가들인 만큼, 한국의 선거 패배는 잘못된 선거 전략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올해 중점 선거로 선정한 4개 선거(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ECOSOC이사국, 국제전기통신연합 사무차장) 가운데 ECOSOC를 제외한 선거에서 모두 낙선한 만큼 선거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 관계자는 "과도한 입후보가 선거의 교섭력을 저해한 측면이 있는 만큼 이를 감안해 선거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