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거짓과 억지로 세상을 뒤엎는 친일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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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독점한 친일 공격
북한 도발에도 정략적 활용
정세현, 한미일 합동훈련에
"대통령실 친일파 있나" 주장
해방 77년이 지났는데도
친일 타령으로 北 위협 가려
조일훈 논설실장
북한 도발에도 정략적 활용
정세현, 한미일 합동훈련에
"대통령실 친일파 있나" 주장
해방 77년이 지났는데도
친일 타령으로 北 위협 가려
조일훈 논설실장
또 친일(親日) 논쟁이다. 너무 수준이 낮아 지겨울 만도 한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을 지피자 온 나라가 화염에 휩싸인다. 콩을 팥이라고 우겨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도대체 무엇이 친일인가. 친일은 어떤 주장이나 행동이 일본에 이롭거나 일본 이익에 봉사하는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렉서스를 사면 친일인가. 일본으로 여행을 가거나 유학을 가면 어떤가. 과거의 소비와 여행은 괜찮고 앞으로의 행동은 시빗거리가 되는가.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 이후 한동안 고전하던 유니클로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것은 우리 국민성이 반일에서 친일로 바뀌었기 때문인가.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던져야 할 정도로 친일 논란은 바닥을 헤맨다. 해방된 지 77년이 넘었지만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조치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친일몰이를 활용해 이득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친일이라는 말은 언제나 종북·좌파 진영의 전유물이었다. 전교조 민노총 민변 참여연대는 자유주의 보수진영을 싸잡아 친일파들의 잔당이라고 비난해왔다. 이 공격이 얼마나 계획적이고 집요했던지, 친일의 실재 여부와 관계없이 ‘보수=친일파’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그 분기점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였다. 그는 대한민국을 일컬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단언했다. 대한민국은 미군정의 용인·조장 아래 친일파 주도로 건국됐으므로 정통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던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서적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적 사실을 뒤틀었다. 당시 군부정권의 압제로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권위가 무너진 틈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실제 건국 역사는 정반대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내각은 거의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됐다. 부통령 이시영은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총장, 국무총리 이범석은 광복군 참모장 출신이었다. 외무장관 장택상은 일제강점기 때 청구구락부 사건으로 투옥됐었고, 재무장관 김도연은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반면 북한 초대 내각엔 말 그대로 친일파들로 사태가 났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추원 참의, 식량수탈기관 임원, 군수, 헌병 보조원, 학도병 지원유세 주동자 출신들이 주류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광복회 카페 운영자금으로 안마시술소나 다닌 김원웅 같은 사람은 “이승만은 친일파”라고 떠들고 다녔다. 거짓과 억지로 세상을 뒤집으려는 수작이었다.
보수정권이 추진한 웬만한 대외정책은 친일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일본과 관계가 없어도 친일파의 짓이라고 몰아붙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소고기 수입 협상과 박근혜 정부 시절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2017년 출간한 에세이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논란 속에… 나는 동학혁명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고 했다. 가만 보니 얼마 전 다른 상황에서도 들어본 얘기다. “일본과 합동군사훈련을 한 것이 나중에 어떤 일의 단초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구한말이 생각난다.” 가당찮은 일본의 한반도 진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실제적 위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 중에 과연 일본의 국익에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일제 시절이 그리워서, 일본 정부로부터 공작금을 받아서? 그저 일본이 좋아서? 나는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겠다.
상식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거들기 위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해주기 위해 합동훈련을 했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세현 같은 사람은 얼마 전 한·미·일 삼각 공조에 대해 “대통령 주변에 친일파들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았다. 한때 장관을 지낸 사람이 겨우 이 정도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북 미사일 도발에는 단 한 번의 감정적 언사를 내뱉지 않았다. 마치 각주를 다는 것처럼 자세하고 친절하게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얼마나 사무친 건지 품위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생김새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이야.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야.” 옆에서 듣고 있던 김어준이 아슬아슬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친일이라는 말은 언제나 종북·좌파 진영의 전유물이었다. 전교조 민노총 민변 참여연대는 자유주의 보수진영을 싸잡아 친일파들의 잔당이라고 비난해왔다. 이 공격이 얼마나 계획적이고 집요했던지, 친일의 실재 여부와 관계없이 ‘보수=친일파’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그 분기점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였다. 그는 대한민국을 일컬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단언했다. 대한민국은 미군정의 용인·조장 아래 친일파 주도로 건국됐으므로 정통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던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서적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적 사실을 뒤틀었다. 당시 군부정권의 압제로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권위가 무너진 틈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실제 건국 역사는 정반대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내각은 거의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됐다. 부통령 이시영은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총장, 국무총리 이범석은 광복군 참모장 출신이었다. 외무장관 장택상은 일제강점기 때 청구구락부 사건으로 투옥됐었고, 재무장관 김도연은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반면 북한 초대 내각엔 말 그대로 친일파들로 사태가 났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추원 참의, 식량수탈기관 임원, 군수, 헌병 보조원, 학도병 지원유세 주동자 출신들이 주류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광복회 카페 운영자금으로 안마시술소나 다닌 김원웅 같은 사람은 “이승만은 친일파”라고 떠들고 다녔다. 거짓과 억지로 세상을 뒤집으려는 수작이었다.
보수정권이 추진한 웬만한 대외정책은 친일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일본과 관계가 없어도 친일파의 짓이라고 몰아붙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소고기 수입 협상과 박근혜 정부 시절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2017년 출간한 에세이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논란 속에… 나는 동학혁명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고 했다. 가만 보니 얼마 전 다른 상황에서도 들어본 얘기다. “일본과 합동군사훈련을 한 것이 나중에 어떤 일의 단초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구한말이 생각난다.” 가당찮은 일본의 한반도 진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실제적 위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 중에 과연 일본의 국익에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일제 시절이 그리워서, 일본 정부로부터 공작금을 받아서? 그저 일본이 좋아서? 나는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겠다.
상식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거들기 위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해주기 위해 합동훈련을 했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세현 같은 사람은 얼마 전 한·미·일 삼각 공조에 대해 “대통령 주변에 친일파들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았다. 한때 장관을 지낸 사람이 겨우 이 정도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북 미사일 도발에는 단 한 번의 감정적 언사를 내뱉지 않았다. 마치 각주를 다는 것처럼 자세하고 친절하게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얼마나 사무친 건지 품위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생김새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이야.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야.” 옆에서 듣고 있던 김어준이 아슬아슬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