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이른바 ‘빅스텝’을 밟으면서 기준금리가 10년 만에 연 3%에 재진입했다. 한은의 대폭적 금리 인상은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대응을 내세운 미국 금리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으로 올 들어서만 3%포인트나 올렸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연준(Fed)의 최종금리 전망치가 당초 연 4%에서 4%대 후반으로 높아지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됐다”며 미국 금리를 추종해야 하는 현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제 급등한 금리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에 대해서는 새삼 긴말이 필요 없게 됐다. 큰 걱정은 역시 가계와 기업의 부채 문제다. 급등세인 시중금리는 총 4698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배에 달하는 가계와 기업 빚 부담을 급격히 키우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고환율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오른 금리가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는 구조적 악순환 국면에 처한 것이다. ‘영끌·빚투족’의 딱한 처지가 연일 보도되는 와중에 코로나 충격을 빌미로 원리금 상환 부담을 유예받아온 한계기업들도 본격적으로 한파에 노출되고 있다.

더 큰 우려는 금리 인상의 구조적 한계다. 인플레이션 방어와 자본유출 방지·고환율 대응으로 빅스텝까지 불사하지만, 금리 카드는 고물가 대응책 겸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경제·안보의 일체화 기류 속 글로벌 가치사슬(GVC) 붕괴로 소비·투자·고용이 다 얼어붙은 지금의 복합위기는 그만큼 다면적이다. 한은 홀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거침없는 미국의 금리 인상은 ‘킹달러’ 시대를 열면서 각자도생 시대를 재촉하고 있다.

경기 순환 속성상 언젠가 반등하겠지만, 얼마나 큰 상흔을 남기면서 언제쯤에나 바닥을 찍을지가 관건이다. 가급적 경제가 덜 악화하는 선에서 반등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행여라도 정부가 금리 카드 뒤로 숨으면서 규제 혁파와 구조 개혁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회피해선 안 되는 이유다.

불황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끝까지 연착륙을 시도하면서 펀더멘털 지키기와 경제의 체질 개선을 주도하는 게 정부 몫이라면, 가계와 기업은 근검절약하며 허리띠를 죄는 수밖에 없다. 덜 쓰기, 임금 인상 자제, 해외 소비 줄이기는 지금 같은 극심한 흉년기에 기본이다. 계속 뛰는 미국 금리를 추종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을 보면 최악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내년 성장률이 기존의 2.1%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한은의 수정 전망치를 보면 내년이 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