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디지털 시대의 생존기
10년쯤 됐을까? 딸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갔다.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 보던 일본 만화영화에서 익힌 일본어 실력으로 지하철에서 나오는 방송도 알아듣고 가끔은 간단한 질문도 하는 딸이 대견하기만 했다. 또 처음으로 상세한 계획 없이 딸만 쫓아다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많았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버스를 타면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반복되는 질문에 딸이 짜증을 냈다. “엄마가 찾아보면 되잖아” “어디서?” “구글”이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실험에 필요한 보드를 컴퓨터 본체를 열고 직접 설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컴퓨터를 타자기로만 쓰던 연구원에게 엑셀에 공식을 넣어 계산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교수가 된 초기에는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학생들이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가서 컴퓨터를 최적화해서 반도 못 알아들었던 장황한 설명과 함께 돌려주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학생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오류가 날 때 도움을 청하면 “처음 보는 문제인데요” 하고 가버리는 학생이 더 많아졌다. 어느 날 한 여학생에게 도움을 구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 “검색해보니 이렇게 할 수 있어요” 하고 알려주었다. 컴퓨터 오류 해결에도 검색이 답이라는 것을 배웠다.

은퇴하고 나서는 크고 작은 컴퓨터 문제 해결을 위해 검색을 많이 한다. 그리고 찾은 해법을 시도해 보곤 한다. 가능하면 가장 최근에 올린 제안을 먼저 시도해 보는 요령도 생겼다. 성공 확률은 3분의 1보다 작은 것 같지만 가끔은 혼자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에 뿌듯하다. 관공서나 은행 등의 홈페이지를 이용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고객상담센터를 이용하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는 것도 배웠다. 요즘은 유튜브 영상에서도 많은 정보를 구할 수 있으니 시간과 끈기, 그리고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계를 헤쳐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윈도, 오피스 등이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사용하는 컴퓨터 중 적어도 한 대는 최신 버전을 설치하려 노력한다. 각 버전에서 오는 변화에 점차 익숙해지기 위함이다.

딸과의 일본 여행 한참 후에 혼자 유럽 출장을 갔을 때 구글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목적지까지 버스나 지하철 노선을 찾고, 식당도 찾아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음식도 시켜보고, 지명을 한글로 표시해 발음은 할 수 있었고, 영어가 안 통하면 번역기로 의사를 전달했다. 돋보기를 쓰고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대고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 디지털 시대의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