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이르면 내년 2분기부터 가스를 공동구매하기로 했다. 에너지 대란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하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EU 회원국들은 가스 가격상한제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12일(현지시간) EU 27개 회원국의 에너지 부문 장관들은 체코 프라하에서 비공식 회의를 열고 가스 공동구매에 합의했다. EU 의장국인 체코의 요세프 시켈라 산업통상부 장관은 “EU 회원국들은 내년 여름 이전부터 가스를 공동구매할 예정”이라며 “올해보다 더 상황이 어려울 전망인 내년 겨울에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U 회원국들은 EU에서 거래되는 가스 가격의 새로운 지표(벤치마크)를 마련하는 데도 합의했다. EU 집행위원회가 벤치마크 개발을 담당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벤치마크 역할을 해왔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가격 왜곡이 심화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EU는 이번 회의 결과를 반영해 오는 18일 에너지 위기 대응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가스 가격상한제를 도입할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카드리 심슨 EU 에너지정책 담당 집행위원은 “EU 회원국들이 가스 가격상한제를 충분히 지지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며 “이번 주말 가격상한제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U 회원국들은 가스 가격상한제 도입엔 대체로 찬성하지만, 세부 내용을 두고 의견이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EU 미가입국이긴 하지만 EU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노르웨이가 가격상한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러시아에선 에너지를 무기 삼아 EU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또다시 커졌다. 러시아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에너지위크 행사에서 “이번 겨울이 따뜻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5~7일간은 비정상적으로 추울 것”이라며 “에너지 수요가 가장 많은 날엔 유럽에서 하루 약 8억㎥의 천연가스가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스프롬은 유럽의 가스 재고가 저장 능력 대비 현재 91% 수준이지만 내년 3월엔 5%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이날 같은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터키를 통해 유럽에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독일은 에너지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독일 경제부는 내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0.4%로 제시했다. 지난 4월 내놓은 예상치(2.5%)보다 2.1%포인트나 낮췄다. 올해 GDP 증가율 전망치도 2.2%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물가상승률은 올해 8%를 웃돈 뒤 내년 7%대, 2024년 2.4%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경기 침체가 올 3~4분기와 내년 1분기에 가장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