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갤럭시의 위기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추락하고 있다. 애플 아이폰은 삼성전자의 '안방'에서 보란 듯 세력을 넓혀가는 중이다.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선택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단지 기술적 요소가 아니란 게 삼성전자의 고민거리다. 애플의 성장 요인이자 삼성전자 위기의 핵심은 '미래고객 선호도' 차이에 있다. 현장의 반응을 짚어보고 향후 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 전망해본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혼자만 갤럭시 쓰면 애들 사이에서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뭔가 소외당하는 느낌이에요. 친구들도 많이 쓰는 아이폰이 좋아요."

최근 서울의 한 초·중학교 인근 카페에 중학생 4명이 우르르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휴대전화는 공교롭게도 모두 다 아이폰이었다. 중학교 1학년 A씨는 "아이폰 쓰는 애들끼리 '에어드롭(AirDrop)' 할 수 있고 사진도 잘 나온다. 디자인도 좋아 대부분 아이폰을 좋아한다"며 "아이폰11이나 12처럼 구버전이라도 좋다. 꼭 프로가 아니더라도 기본모델, 최저 용량 64GB만 사줘도 다들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학생 B씨도 "반에서 3분의 2 이상이 아이폰 쓰는데 나만 안 쓰면 소외감 느낀다"며 "학교에서 갤럭시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아이폰 쓰는 애가 '그냥 내 걸로 찍자' 하고 이런 식이 돼 버린다"고 털어놨다.
"안 쓰면 왕따"…아이폰 안 사준다고 방문 부순 아들 [위기의 갤럭시 中]
이처럼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애플 아이폰의 약진이 심상찮다. 종전에 비해 격차가 좁혀졌다고 해도 여전히 갤럭시가 시장점유율에서 우위지만 렌즈를 좁혀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정 연령층에선 국내 시장 절대강자인 삼성전자 갤럭시가 아이폰에 밀리는 현상마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MZ세대를 포함한 젊은층부터 2000년 중반 이후 태어난 어린 10대 '알파세대'까지 아이폰 선호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경향은 어릴수록, 최근 1~2년 사이에 뚜렷한 변화로 감지된다.

국내 시장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에게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애플의 공세가 심해지고 있다. 갤럭시 '안방'인 국내 시장에서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자)를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자칫 한순간에 애플이 삼성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한 번 굳어진 브랜드 이미지는 바꾸기 쉽지 않다.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폰 안쓰면 왕따?…'방문 부순 아들' 게시글 화제

"안 쓰면 왕따"…아이폰 안 사준다고 방문 부순 아들 [위기의 갤럭시 中]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2년새 국내 20대의 아이폰 사용율은 크게 높아졌다. 지난 7월 한국갤럽에 따르면 국내 20대 가운데 아이폰을 쓰는 비율은 과반(52%)을 기록했다. 2020년 조사 때는 44%로 집계됐다. 2년 만에 20대 아이폰 사용률이 무려 12%포인트나 늘었다. 같은 기간 갤럭시는 45%(2020년)에서 44%(2022년)로 2년 사이에 1%포인트 하락했다. 2021년 20대의 갤럭시 사용율은 39%까지 떨어졌으나 같은해 4월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 철수 등 영향으로 반등한 것으로 추측된다.

어린 '잠재 고객' 알파세대까지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어 자칫 향후 스마트폰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고교생은 물론, 최근 들어선 초등학생 자녀들까지 아이폰을 사달라고 졸랐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한 듯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폰 안 사준다고 방문 부순 아들' 게시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애플의 아이폰14 등 신제품이 국내에 정식 출시한 7일 서울 중구 애플스토어 명동점에서 한 시민이 아이폰14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애플의 아이폰14 등 신제품이 국내에 정식 출시한 7일 서울 중구 애플스토어 명동점에서 한 시민이 아이폰14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소재 중학교 2학년 C씨는 "'로켓'이라는 일상 공유 앱(애플리케이션)이 있는데 갤럭시를 쓰면 이 앱을 못 쓴다. 애들끼리 에어드롭으로 사진을 주고받을 때 혼자만 따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연락해 사진을 받는 것도 번거롭다"면서 "친구들이 다 아이폰을 쓰니 같은 걸 쓰는 게 공감대도 형성되고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어른들 쓰는 것(갤럭시)과는 다른 폰을 쓰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젊은 1020 세대가 유독 아이폰을 선호하는 배경에는 '또래 문화'와 '브랜드 가치'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학생들 사이에서 애플 기기끼리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에어드롭'이 인기인데, 갤럭시 사용자란 이유로 번거롭게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받게 되면 또래 집단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로켓(LOCKET)' 앱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앱은 스마트폰 홈 화면에서 친구의 사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5명 인원으로 한정된 폐쇄형 SNS인데 애플 앱스토어에서 먼저 출시됐다. '틱톡' 입소문을 타고 또래 집단에서 쓰고 있는데, 이 5명 안에 못 든다는 이유로 교우관계를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은 네트워크 형성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구매 동기로 작용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가 또래에서 소외될까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데, 아이 친구들 대부분 아이폰을 쓰는데 자녀만 안 사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아이폰의 경우 아이들끼리 공유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과거 '등골 브레이커 패딩' 현상보다 더욱 강하게 구매 강요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래 문화' '브랜드 가치' 영향…갤럭시, 점유율 '경고등'

내게 어울리는 애플워치 밴드는? 사진=뉴스1
내게 어울리는 애플워치 밴드는? 사진=뉴스1
아이폰의 또다른 인기 비결은 애플의 독특한 생태계가 꼽힌다. 아이폰을 사용하면 아이패드, 애플워치, 아이팟, 맥 등 애플 기기를 연달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애플은 특유의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애플 브랜드 기기 간 강력한 연동이 주는 편리함이 있어 자연스레 애플 생태계에 빠지는 것이다. 반대로 이런 폐쇄성은 중장년층에겐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50대와 60대의 아이폰 사용율은 각각 4%, 1%에 불과했다. 이들은 대부분 갤럭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아이폰의 외관과 사진효과, 인스타그램 같은 외산 유명 앱과의 호환성 등도 아이폰 선호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중학생 D씨는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더 잘 나오고 인스타에 올려도 화질이 깨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갤럭시는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 "에어팟(애플)은 갤럭시에 써도 되는데 갤럭시버즈(삼성전자)는 아이폰에 연동이 안 된다" 등의 목소리도 나왔다.

대개 부모들이 어린 자녀에게 가격 부담이 덜한 중저가 보급형 갤럭시 시리즈를 사주다 보니 성능 만족도가 떨어져 이미지 브랜드가 부정적으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보급형이 거의 없는 아이폰과 성능 차이가 날 수 있단 얘기다. 이렇게 일단 부정적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되면 향후 스마트폰 구매 결정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료=한국갤럽
자료=한국갤럽
최근 40대의 아이폰 사용율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40대의 아이폰 사용률은 지난해 11%에서 올해 16%로 1년 사이에 5%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40대의 갤럭시 사용률은 79%에서 71%로 8%포인트 하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2009년 국내 1세대 아이폰 이용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40대가 된 영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아이폰을 경험한 세대에 각인된 '젊음' '혁신' 등의 이미지 효과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은희 교수는 "특히 아이폰은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어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것"이라며 "다른 회사가 쫓아간다고 해도 사실 한 번 굳어진 이미지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짚었다.

개통 첫날 500만원 플렉스…애플 MZ '정공법' 갈수록 세진다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14 시리즈 공식 출시일인 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애플스토어에서 고객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14 시리즈 공식 출시일인 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애플스토어에서 고객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애플은 유난히 공격적으로 국내에서 사세를 넓혀왔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서울 가로수길(2018년), 여의도(2021년)에 이어 올 들어 명동과 잠실 지역에 잇따라 애플스토어를 열었다. 이미 강남 2호점 준비를 위해 신논현역 인근 빌딩에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홍대입구역 인근에도 6호점을 낼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애플은 최근 연 국내 매장들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젊은이들을 위한 '퀵' 픽업존을 마련했고, 소규모 '투데이 앳 애플 수업'을 강화했다. 미래 잠재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제품 인지도와 브랜드 경험을 늘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올해 내놓은 역대급 가격의 아이폰14 시리즈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3사는 구체적 수치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공통적으로 젊은층에서 고가 모델(155만~250만원)의 판매가 두드러진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폰14 국내 공식 출시일인 지난 7일 오전 6시30분 애플스토어 명동점에 가장 먼저 도착한 손님은 20대 초반이었다. 에어팟 프로를 착용한 채 한 시간 반을 꼬박 기다린 뒤 매장에 입장해 '애플워치8'을 구매했다. 같은날 아이폰14 시리즈 1호 개통자 역시 20대 중반이었다. 그는 명동점에서 '아이폰14 프로(실버)'와 '애플 워치8 에르메스 에디션'을 샀다. 이들 제품 구매에 쓴 돈만 500만원에 달했다. '애플 제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 젊은층'의 상징적 장면이라 할 만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