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의 뇌에 '가짜 기억'을 심을 수 있을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뉴로사이언스 픽션
로드리고 퀴안 퀴로가 지음
주명진 옮김 / 형주
420쪽│2만5000원
신경과학자가 전하는 도발적 이야기
"기억은 삭제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
'개념 뉴런' 조작하면 기억도 바꿔"
SF영화와 철학·문학 넘나들며 전개
추측과 주장이 강한 것은 유의해야
로드리고 퀴안 퀴로가 지음
주명진 옮김 / 형주
420쪽│2만5000원
신경과학자가 전하는 도발적 이야기
"기억은 삭제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
'개념 뉴런' 조작하면 기억도 바꿔"
SF영화와 철학·문학 넘나들며 전개
추측과 주장이 강한 것은 유의해야
1990년 영화 ‘토탈 리콜’에서 화성 여행을 가고 싶은 퀘이드(아널드 슈워제네거 분)는 리콜이란 여행사를 찾아간다. 리콜은 만들어진 기억을 주입해 여행을 실제로 가는 것보다 싸고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고 광고하는 곳. 퀘이드는 비밀요원이란 콘셉트로 가상 여행을 떠나는데, 그 과정에서 무엇이 진짜 기억인지 혼란에 빠진다.
영화처럼 인간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주입하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아르헨티나 출신인 유명 신경과학자 로드리고 퀴안 퀴로가는 <뉴로사이언스 픽션>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책은 ‘혹성탈출’, ‘매트릭스’, ‘마이너리티 리포트’, ‘인셉션’ 등 SF영화가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영화와 신경과학, 철학, 문학을 매끄럽게 엮어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는 각 장은 플라톤,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등이 제기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지며, 과학 실험을 소개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탐구한다. 그 사이에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소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국 레스터대 석좌교수 겸 신경과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2005년 ‘제니퍼 애니스톤 뉴런’을 발견하며 이름을 알렸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꿔주는 뇌 속의 해마에서 발견된 이 뉴런은 미국 인기 드라마 ‘프렌즈’에 출연한 애니스톤 등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볼 때나 이름을 들었을 때 활성화된다. 오프라 윈프리나 스타워즈 속 인물인 루크 스카이워커에게만 반응하는 뉴런도 있다. 물론 단 하나의 뉴런이 아니라 수천 개의 뉴런을 뜻한다.
이 뉴런들은 ‘개념’에 반응한다. 얼굴의 특정 부위에 반응하는 뉴런이 있다는 건 알려졌지만, ‘개념 뉴런’을 발견한 건 퀴로가가 처음이었다. 이 뉴런은 연관된 개념에도 반응했다. 제니퍼 애니스톤 뉴런은 프렌즈에 같이 나온 리사 쿠드로에게도 반응했다. 루크 스카이워크 뉴런은 스타워즈 속 캐릭터인 요다에게도 반응했다.
저자는 개념 뉴런이 우리의 기억과 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이 뉴런을 조작해 인간의 기억을 바꾸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저자는 “가짜 기억을 주입하는 데 상세한 디테일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으며 추론을 통해 빈 부분을 재구성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어릴 적 브라질 해변에서 형과 시간을 보낸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얼굴, 파도 소리, 해변에 널브러진 해초 냄새를 기억했다. 어떤 색 수영복을 입었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형, 해변, 브라질 등의 개념 뉴런을 주입한다면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개념 뉴런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됐다. 이 뉴런을 침팬지 등 유인원에게 이식한다면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게 되지 않을까. 저자는 영화 ‘혹성탈출’을 다룬 장에서 이에 대해 논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블레이드 러너’를 다룬 글에선 인공지능과 인조인간, 복제인간 등이 인간처럼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본다.
SF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저자의 추측과 주장이 많이 담겨 있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영화처럼 인간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주입하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아르헨티나 출신인 유명 신경과학자 로드리고 퀴안 퀴로가는 <뉴로사이언스 픽션>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책은 ‘혹성탈출’, ‘매트릭스’, ‘마이너리티 리포트’, ‘인셉션’ 등 SF영화가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영화와 신경과학, 철학, 문학을 매끄럽게 엮어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는 각 장은 플라톤,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등이 제기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지며, 과학 실험을 소개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탐구한다. 그 사이에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소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국 레스터대 석좌교수 겸 신경과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2005년 ‘제니퍼 애니스톤 뉴런’을 발견하며 이름을 알렸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꿔주는 뇌 속의 해마에서 발견된 이 뉴런은 미국 인기 드라마 ‘프렌즈’에 출연한 애니스톤 등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볼 때나 이름을 들었을 때 활성화된다. 오프라 윈프리나 스타워즈 속 인물인 루크 스카이워커에게만 반응하는 뉴런도 있다. 물론 단 하나의 뉴런이 아니라 수천 개의 뉴런을 뜻한다.
이 뉴런들은 ‘개념’에 반응한다. 얼굴의 특정 부위에 반응하는 뉴런이 있다는 건 알려졌지만, ‘개념 뉴런’을 발견한 건 퀴로가가 처음이었다. 이 뉴런은 연관된 개념에도 반응했다. 제니퍼 애니스톤 뉴런은 프렌즈에 같이 나온 리사 쿠드로에게도 반응했다. 루크 스카이워크 뉴런은 스타워즈 속 캐릭터인 요다에게도 반응했다.
저자는 개념 뉴런이 우리의 기억과 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이 뉴런을 조작해 인간의 기억을 바꾸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저자는 “가짜 기억을 주입하는 데 상세한 디테일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으며 추론을 통해 빈 부분을 재구성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어릴 적 브라질 해변에서 형과 시간을 보낸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얼굴, 파도 소리, 해변에 널브러진 해초 냄새를 기억했다. 어떤 색 수영복을 입었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형, 해변, 브라질 등의 개념 뉴런을 주입한다면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개념 뉴런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됐다. 이 뉴런을 침팬지 등 유인원에게 이식한다면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게 되지 않을까. 저자는 영화 ‘혹성탈출’을 다룬 장에서 이에 대해 논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블레이드 러너’를 다룬 글에선 인공지능과 인조인간, 복제인간 등이 인간처럼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본다.
SF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저자의 추측과 주장이 많이 담겨 있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