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국내 20개 시중은행의 외화 차입금이 20조원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외화 자금 수요가 늘어나자 은행들이 해외 금융회사에서 외화를 차입해 대출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환율 치솟자…은행 외화 차입금 18조 급증

커지는 외화 조달 비용

16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국내 20대 은행의 외화 차입금 평균 잔액은 85조29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66조1411억원)보다 18조8883억원(28.5%) 급증했다.

같은 기간 외화 차입금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광주은행이었다. 올 상반기 광주은행의 외화 차입금 평균 잔액은 3632억원으로 지난해(2286억원)보다 58.9% 증가했다. 이어 부산은행(53.3%) 국민은행(52.9%) 농협은행(35.6%) 우리은행(34.6%) 등 순이었다.

은행들의 자금 조달액 중 외화 차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은행의 외화 차입 비중은 지난해 2.7%에서 3.9%로 1.2%포인트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외화 예수금(예·적금) 비중은 0.27%포인트 증가(4%→4.27%)하는 데 그쳤다. 당연히 외화 차입은 예수금 유치보다 조달 비용이 더 든다. 그만큼 은행에서 외화를 빌리는 기업들의 이자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단기성 외화 차입금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 상반기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외화 콜머니 평균 잔액은 3조6201억원으로 작년보다 34.6% 늘었다. 외화 콜머니는 은행 간 외화를 초단기로 조달하는 거래를 말한다. 금융회사들은 수출입대금 결제, 외화 대출 등 대고객 거래에 따라 일시적으로 외화 자금이 부족할 때 외화 콜시장에 참여한다.

외화 유동성 리스크도↑

은행들이 이렇게 외화 차입금을 늘리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외화 자금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의 외화 대출 평균 잔액은 83조5314억원이었다. 지난해 말(68조7406억원) 대비 21.5% 증가했다.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무역수지 적자로 국내 기업들의 달러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327억1400만달러를 기록했다. 무역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일각에선 한·미 간 금리차 확대, 고환율 등으로 인해 외화 유동성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은행과 금융당국은 “현재로선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고 일축한다. 실제 지난 2분기 기준 국내 은행들의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평균 123%로 최소 규제 비율(80%)보다 높은 수준이다. 수치상으로는 지난해 4분기(113%)와 올해 1분기(115%)보다 개선됐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가 지속되고 무역적자 기조가 장기화하면 기업들의 외화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은행 리스크관리 담당 부행장은 “달러가 비싸긴 하지만 구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경상수지 적자와 해외 투자 손실 확대 등으로 외화 유동성이 악화할 가능성에 충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