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자율주행은 먼 얘기"…도요타, 20년간 '지능형 운전'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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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퓨처테크 현장을 가다
한경-서울대 공대 공동 기획
(4) 도요타 실리콘밸리 연구센터
도요타, 테슬라·구글과 다른 길
AI와 사람의 '협동 운전'에 집중
1990년대부터 '운전자 데이터' 쌓아
초보 위급상황일 때 더 적극 개입 등
개인 성향 따라 작동하는 자율주행
한경-서울대 공대 공동 기획
(4) 도요타 실리콘밸리 연구센터
도요타, 테슬라·구글과 다른 길
AI와 사람의 '협동 운전'에 집중
1990년대부터 '운전자 데이터' 쌓아
초보 위급상황일 때 더 적극 개입 등
개인 성향 따라 작동하는 자율주행
도요타리서치인스티튜트(TRI) 드라이빙 시뮬레이션실. 지난 8일 여러 차례의 보안 검문을 거쳐 들어간 작은 영화관 크기 사무실에는 모형 차량과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기자가 손목에 웨어러블 기기를 차고 차량에 올라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자 모형 차량은 실제 운전하는 것처럼 좌우로 강하게 흔들렸다.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급하게 꺾자 스크린 속 차량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이를 보던 현장 엔지니어는 “당신 손에 땀이 나고 동공도 갑자기 확장되고 있다”며 “진정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시뮬레이터는 웨어러블 센서를 통해 운전자의 동공 크기, 시선, 심박수, 땀샘의 수축 등을 파악해 운전자 패턴 데이터를 축적한다. 눈동자의 위치까지 모니터링해 운전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파악하는 장치다. 일반 시뮬레이터가 자율주행 데이터를 쌓는 용도인 데 비해 TRI 시뮬레이터는 운전자 데이터까지 얻도록 설계됐다. 자율주행 기술의 시작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믿는 도요타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TRI는 이를 ‘발상의 전환’이라고 자부한다. 아바나시 발라찬드란 TRI 자율주행부문장은 “SAE 구분은 AI 기술력이 올라가면 기계 개입이 많아질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에 따른 것”이라며 “도요타는 사람 개입이 있는 단계에서 AI 기술을 끌어올려 자율주행의 장점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도요타의 ‘인간 중심의 지능형 운전(HID)’은 기존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을 인간 행태 분석에 기반해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자동비상제동(AEB), 차체제어장치(ESC) 등 기존 ADAS는 정해진 상황에서 단순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기계 개입이다. 반면 사람 운전 데이터를 학습한 HID의 AI 알고리즘은 운전자의 실력, 상황, 습관 등 전반적인 주행 상황을 고려해 운전자를 보조한다. 가령 운동 신경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운전자나 주의 산만이 감지되는 운전자라면 위험 감지 시 AI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식이다.
HID의 집약체는 드리프트 때도 안전하게 자율주행하는 기술이다. 드리프트는 코너를 돌 때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으면 뒷바퀴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상태를 말한다. 기자가 직접 방문한 차량 실험실에는 TRI의 비기 ‘레아’가 있었다. 레아는 드리프트 시 주행 능력을 끌어올린 자율주행차다. 레아는 최대 시속 300㎞에서도 드리프트 자율주행에 성공했다.
TRI는 레아에 운전자 데이터값을 입력해 사고로 드리프트 발생 시 구동되는 안전 주행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있다. 알고리즘에는 노면의 미끄러움, 기온·습도, 타이어 상태 등 차량 요소에 운전자 데이터를 반영해 사고를 방지한다. 레아 개발을 맡고 있는 가즈노리 니무라 씨는 “사람마다 미끄러짐 사고가 났을 때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며 “HID 드리프트 대응 기술은 개인 성향과 주변 환경을 감안해 자동차가 안전하게 정상 궤도로 복귀하는 것을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완전자율주행 시대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2012년 발의된 자율주행법(Self Drive Act)은 아직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후지카메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45년에도 레벨 2, 3의 자율주행 차량 비중이 85%에 달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도요타의 ‘골든타임’이 오고 있다고 분석한다. 도요타가 ‘사람과 기계의 협력’이라는 구상을 오래전부터 설계했고 해당 분야 데이터를 방대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자율주행차 연구를 한 도요타는 ‘사람 중심’이란 키워드를 고집하며 첨단안전차량(ASV:advanced safety vehicle) 기술 개발 때부터 운전자 행태 데이터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관 한국자동차연구원 스마트카연구본부장은 “국내 업체들은 당장 ‘패스트팔로어’는 될 수 있지만 미래를 주도하는 ‘게임체인저’가 되기는 쉽지 않다”며 “도요타처럼 오랫동안 하나의 철학을 밑바탕에 깔고 오랜 시간에 걸쳐 조직 역량을 동원하는 묵직함은 아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로스알토스=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시뮬레이터는 웨어러블 센서를 통해 운전자의 동공 크기, 시선, 심박수, 땀샘의 수축 등을 파악해 운전자 패턴 데이터를 축적한다. 눈동자의 위치까지 모니터링해 운전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파악하는 장치다. 일반 시뮬레이터가 자율주행 데이터를 쌓는 용도인 데 비해 TRI 시뮬레이터는 운전자 데이터까지 얻도록 설계됐다. 자율주행 기술의 시작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믿는 도요타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람 중심의 자율주행 기술 추구
대부분 자율주행업체는 미국자동차공학회(SAE)가 설정한 자율주행 단계 ‘레벨 4’와 ‘레벨 5’에 초점을 맞춘다. SAE는 사람의 개입 수준으로 단계를 구분한다. 레벨 4와 5는 사람의 개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인공지능(AI)이 운전하는 자율주행이다. 반면 TRI는 레벨 2와 3에 집중한다. 사람이 운전하되 AI가 보조하는 단계(레벨2)와 특정 조건에서만 AI가 주도권을 잡고 운전하는 수준(레벨3)에서 AI 성능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TRI는 이를 ‘발상의 전환’이라고 자부한다. 아바나시 발라찬드란 TRI 자율주행부문장은 “SAE 구분은 AI 기술력이 올라가면 기계 개입이 많아질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에 따른 것”이라며 “도요타는 사람 개입이 있는 단계에서 AI 기술을 끌어올려 자율주행의 장점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도요타의 ‘인간 중심의 지능형 운전(HID)’은 기존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을 인간 행태 분석에 기반해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자동비상제동(AEB), 차체제어장치(ESC) 등 기존 ADAS는 정해진 상황에서 단순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기계 개입이다. 반면 사람 운전 데이터를 학습한 HID의 AI 알고리즘은 운전자의 실력, 상황, 습관 등 전반적인 주행 상황을 고려해 운전자를 보조한다. 가령 운동 신경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운전자나 주의 산만이 감지되는 운전자라면 위험 감지 시 AI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식이다.
HID의 집약체는 드리프트 때도 안전하게 자율주행하는 기술이다. 드리프트는 코너를 돌 때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으면 뒷바퀴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상태를 말한다. 기자가 직접 방문한 차량 실험실에는 TRI의 비기 ‘레아’가 있었다. 레아는 드리프트 시 주행 능력을 끌어올린 자율주행차다. 레아는 최대 시속 300㎞에서도 드리프트 자율주행에 성공했다.
TRI는 레아에 운전자 데이터값을 입력해 사고로 드리프트 발생 시 구동되는 안전 주행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있다. 알고리즘에는 노면의 미끄러움, 기온·습도, 타이어 상태 등 차량 요소에 운전자 데이터를 반영해 사고를 방지한다. 레아 개발을 맡고 있는 가즈노리 니무라 씨는 “사람마다 미끄러짐 사고가 났을 때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며 “HID 드리프트 대응 기술은 개인 성향과 주변 환경을 감안해 자동차가 안전하게 정상 궤도로 복귀하는 것을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도요타, 가까운 미래 상용차 시장 잡을 것”
이런 HID의 기술적 접근엔 당장 상용 자율주행차 시장을 잡겠다는 고도의 전략이 숨겨져 있다. 발라찬드란 부문장은 “사람들의 인식, 기술적 한계, 제도의 미비 등으로 완전한 자율차 시장이 열리는 것은 몇십 년 뒤의 일”이라며 “그 사이 사람은 AI와 함께 운전할 것이고, TRI는 이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실제 완전자율주행 시대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2012년 발의된 자율주행법(Self Drive Act)은 아직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후지카메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45년에도 레벨 2, 3의 자율주행 차량 비중이 85%에 달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도요타의 ‘골든타임’이 오고 있다고 분석한다. 도요타가 ‘사람과 기계의 협력’이라는 구상을 오래전부터 설계했고 해당 분야 데이터를 방대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자율주행차 연구를 한 도요타는 ‘사람 중심’이란 키워드를 고집하며 첨단안전차량(ASV:advanced safety vehicle) 기술 개발 때부터 운전자 행태 데이터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관 한국자동차연구원 스마트카연구본부장은 “국내 업체들은 당장 ‘패스트팔로어’는 될 수 있지만 미래를 주도하는 ‘게임체인저’가 되기는 쉽지 않다”며 “도요타처럼 오랫동안 하나의 철학을 밑바탕에 깔고 오랜 시간에 걸쳐 조직 역량을 동원하는 묵직함은 아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로스알토스=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