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성장 계량적 증명…추격의 경제학 완성해 노벨상 도전할 것"
경제학 분야 학술상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특히 최근 다산경제학상이 이론 분야에 많이 돌아간 것 같은데, 응용 분야도 격려하기 위한 취지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흥국 성장 계량적 증명…추격의 경제학 완성해 노벨상 도전할 것"
학문의 길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기에, 이런 상은 큰 자극과 격려가 된다. 나아가 노벨경제학상과 같은 해외의 더 큰 상을 노려보는 계기로도 삼고자 한다.

노벨위원회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수상 기준으로 어떤 학자의 평생 누적된 업적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과학적 발견에 대해 수여한다고 돼 있다. 즉, 특정한 독창적 공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의 인터뷰나 업적을 보면 그분들은 하나같이 기존 연구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만의 주제를 팠다. 남과 다르면서도 널리 인정받을 수 있는, 많은 피인용을 받을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아무도 하지 않는 주제를 선택하면 사실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 줄 위험이 크다. 반면에 유행하는 주제를 따라서 연구하면 논문을 학술지에 한두 개 게재할 수는 있지만, 그 주제에 대해 이미 앞서가고 있는 서구학자들의 논문을 인용하지 절대 한국과 같은 변방 학자의 논문을 인용하지 않는다.

내가 지난 30년간 연구해 온 주제는 후발국의 경제발전, 즉 추격과 추월 전략이다. 최빈국에서 시작해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에서 자란 한국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주제인 동시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주제다. 내가 발견한 추격·추월의 비밀은, 추격의 시작은 선진국을 배우고 모방을 통한 학습이지만 최종적 관건은 앞선 나라들이나 기업과는 뭔가 다른 혁신과 경로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추격만 해서는 추격할 수 없다’는 추격의 역설이다.

이런 명제의 구체적 예로서 한국이 성공적 추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한국은 정보기술(IT)과 같은 기술 수명(사이클)이 짧은 기술 분야를 선택 특화해 성장해왔다. 사이클이 짧은 분야에서는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는 기존 기술도 금방 낡은 것이 되기에 후발 진입자 입장에서 보면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소위 벼락치기가 가능한 분야다. 이런 분야가 좋은 이유는 혁신 빈도가 높기에 성장성도 높기 때문이다. 빨리 성과를 내기 쉬우면서도 동시에 성장성도 높은 분야다.

기술 수명은 미국 특허 피인용 자료를 가지고 실제 측정이 가능하다. 오래된 특허를 많이 인용할수록 사이클이 긴 산업이고, 바로 선진국들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다. 이런 기술수명지표로 한국 대만 등 신흥국의 성장을 계량적으로 증명한 것이 나의 주 업적 중 하나다.

이제 한국은 사이클이 짧은 분야에서 일정의 추격을 달성한 이후 사이클이 길고 진입장벽도 긴 바이오와 같은,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던 분야로 진입하고 있다. 궁극적 목표는 선진국과 같은 ‘롱 사이클’ 분야로 가는 것이지만, 추격 단계에서는 그 반대인 ‘쇼트 사이클’ 분야로 갔다가 나중에야 롱 사이클 분야로 가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고, 그것이 바로 ‘우회(detour) 전략’이다. 처음부터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로 갔다가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선발국과는 다른 분야면서도 동시에 성장성은 높아야 한다는 기준은 바로 앞에서 제시한 노벨상을 타기 위한 주제 선택을 하는 기준과도 같다. 실물 경제에서의 후발국 추격의 비밀이나 경제학이란 학문에서 어떻게 추격을 달성할 것인가의 원리는 같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추격의 경제학을 완성하고 동시에 경제학계에서의 추격도 완성하고자 하는 저의 노력을 계속 격려하고 지켜봐 달라.

△1960년생
△198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경제학 박사
△1989~1992년 미 이스트웨스트센터 책임연구원
△1992~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조·부교수
△1997년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퀴스후즈후’ 등재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04~2005년 세계은행 컨설턴트
△2008년~ 경제추격연구소 이사장
△2014년 슘페터상 수상
△2016~2017년 국제슘페터학회 회장
△2019년~ 서울대 경제연구소 비교경제연구센터장
△2020~2021년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2021~2022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