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가 5.6% 상승하며 인플레이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전기, 가스요금이 지난 4월, 7월에 이어 10월에 또 한 차례 인상돼 작년 말 대비 각각 17.9%, 38.5% 높아지며 살림살이가 나날이 팍팍해지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에너지가격 상승 추세가 당분간 이어지며 인플레이션 국면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첫째, 산유국의 감산 정책이다. 지난 5일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는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세계 소비량의 2%에 해당하는 200만 배럴은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분을 상쇄하고 남을 양이어서 유가 급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이번 감산 결정으로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10달러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이 한계에 달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유가 안정을 위해 지난 3월부터 하루 100만 배럴씩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재고량이 1984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물론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과거와 같은 수준의 전략비축유를 유지할 필요가 줄었지만, 현재 비축량을 고려했을 때 전략비축유 방출 여력은 거의 소진됐다고 봐야 한다.

셋째, 당분간 석유가스 공급 능력이 크게 늘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2014년 7420억달러까지 증가했던 석유가스 개발 투자가 2015년 파리협정 이후 탄소중립 정책 확산에 따라 급격히 줄어 2020년 3530억달러로 거의 반 토막 난 뒤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넷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유럽의 천연가스 수급 불균형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가스 수출 제한에 따른 가스 부족을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고 있다. 당장의 대체 물량만 해도 우리나라 연간 수입량보다 많은 55bcm에 이르고, 중장기적으로는 150bcm을 넘어설 전망이어서 LNG 현물 가격은 계속 초강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가격 폭등은 이미 물가 인상, 경상수지 적자, 환율 상승의 중요 원인으로 작용하며 국내 경제를 옥죄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가격 고공행진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3%에 이르는 우리로서는 절약과 고통 분담 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에너지 절약은 가격 인상 신호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거 정부처럼 정치적 이유로 에너지가격을 억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에 역행할 수 있는 유류세 인하와 같은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에너지가격 인상은 모든 소비자를 힘들게 한다. 이럴 때 재정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만, 지난 정부 5년 동안 재정 건전성이 크게 훼손돼 그마저 어려운 처지다. 재정 부담 없이 절약과 고통 분담을 유도하는 묘수에 가까운 정책이라도 찾아야 할 국면이다.

유류세 원상 복구와 소형차 기준으로 산정된 필수 소비량에 대한 유류세 면제를 결합하는 패키지 정책을 제안해 본다. 유류세 원상 복구는 세율 인상에 따른 세수 증가와 소비자가격 인상에 의한 절약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필수 소비량에 대한 유류세 면제는 서민가계의 부담 경감과 소형차 사용을 유도해 장기적 절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유류 소비량이 많은 고소득층의 부담은 증가하겠지만, 고통 분담의 상부상조 정신으로 수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