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
김태윤
에스토니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2007년 에스토니아는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겪은 뒤 국가의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했다. 그때부터 에스토니아는 클라우드에 동반된 세계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를 누리기 시작해 국민의 안목과 경쟁력이 쑥쑥 향상됐다. 러시아 접경국임에도 정보 유출 두려움 없이 발틱의 기적을 이루며 디지털 강국으로 올라섰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최근까지 데이터 외국 반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겨우 며칠 전에 데이터 보존과 관리를 위해 황급히 해외 클라우딩 작업을 했다. 첩보영화를 연상케 하는 전격적이고 비밀스러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러시아가 처음 침공한 며칠간 다수의 포탄이 공항 등 전통적인 핵심 시설에 떨어졌지만, 다른 많은 수의 포탄은 데이터센터에 떨어졌다. 다행히 클라우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데이터가 온존돼 전쟁 중에도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이 야기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가의 기본과 국민의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데이터를 어디에 둬야 하며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폐쇄된 공간에 데이터를 잘 숨겨놓고 꺼내 쓰지는 않을 것인가? 과연 안전한가? 우리만 쓰는 프로그램을 우리 힘으로만 개발하려고 한다면 산업과 문명은 발전할 수 있을까?

데이터는 현대와 미래 안보경제산업사회문화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원유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도 드디어 자원 부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원유를 채굴해서 활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원유는 에너지원으로도 쓰이지만, 현대 인류문명이 누리는 모든 섬세한 합성품의 재료가 된다. 즉 현대문명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따라서 데이터를 제대로 보관하고 관리하고 활용하고 가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열린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의 개인정보보호 규제는 너무나 과도하다. 국가가 나서서 보호한다고 하는 개인정보의 범위가 너무 넓다. 조금이라도 개연성이 있으면 개인정보라고 이름 짓고 규제해 민간에 큰 부담을 지운다. 따라서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인과관계, 즉 지능을 창출해야 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국내에서는 헛돌기 마련이다. 데이터가 없는데 무슨 학습을 하겠으며 검증을 하겠는가? 원유 매장량은 많은데, 채굴 가능량은 없는 이상한 유전을 만드는 짓이다.

고객 정보를 다룰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업체와 개인은 혹여 실수하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무서워서 어떻게 데이터를 다루겠는가? 모두 주춤주춤하면서 10여 년 이상을 낭비했다. 예민한 정보는 잘 보호하고 또 그렇지 않은 정보는 대담하게 유통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의 거시적 비용과 미시적 부담을 잘 이해하고 데이터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쪽으로 보다 적극적이고 담대한 방향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많이 늦었다. 우리나라는 유전이 있지만 쓸 줄 몰랐던 고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편 정부가 2년간 122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차세대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이 오류투성이로 드러났다. 전국의 복지 공무원이 이 시스템을 통해 각종 수당 신청을 접수하고 심사한 뒤 지급하게 돼 있다. 공무원들이 시스템 소비자인데 프로그램 하자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크게 터져 나왔다. 우리 정부의 프로그램과 시스템은 거의 모두 정부가 유일한 수요자이자 소비자다. 발주자인 공무원도 그리 까탈스러운 소비자가 아니다. 규정 준수만 신경 쓰는 매우 무난한 소비자다. 결국 국제 경쟁력이 있는 개발이 산출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운용하는 많은 데이터센터와 시스템, 프로그램도 노코드나 로코드에 기반해야 하며 복원력과 보안 기능을 갖춘 고성능 클라우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국내 개발업체가 국제 경쟁력을 축적해 세계에 진출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첫 단추는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를 공개하고 클라우드에 올려놓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인프라와 소프트웨어가 클라우드에 이미 장착돼 있으니, 이것들을 기반으로 새롭고 강력한 개발을 할 수 있다. 개방해야 투명해지고 데이터보호와 보안도 가능해진다. 옆집에 전기가 들어오고 있는데 우리 집만 부싯돌 마찰열로 불을 생산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