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케미칼 양극재 광양공장 내부 전경.
포스코케미칼 양극재 광양공장 내부 전경.
포스코케미칼이 제너럴모터스(GM)에 이어 미국 양대 자동차 업체인 포드에 대규모 양극재 공급을 추진한다. 북미산 배터리 광물·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을 앞두고 소재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포드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달 20일 한국을 찾은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와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포드 요청에 따라 이날 회동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팔리 CEO는 이날 회동에서 최 회장에게 양극재 공급을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 포드가 포스코그룹에 양극재 공급을 공식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리튬과 니켈 등 배터리 광물 분야에서도 협력관계를 맺자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 요청에 따라 포스코그룹은 2차전지 소재 계열사인 포스코케미칼을 중심으로 양극재 공급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케미칼이 포드와 SK온의 배터리 합작사인 블루오벌SK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포스코케미칼이 SK온에 양극재를 정식 공급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코케미칼은 포드와 5년 이상의 장기 공급계약을 맺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포스코케미칼은 지난 7월 말 GM과 13조7696억원 규모의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기간이 내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포드 대상 공급규모는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구체적인 공급규모 및 시점은 내부에서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포스코그룹의 설명이다. 그룹 관계자는 “포드를 비롯해 글로벌 자동차 및 배터리 업체와 폭넓게 양·음극재 사업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며 “공급 계약 관련 일정이나 물량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포스코케미칼은 2차전지 배터리 4대 핵심 소재(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중 양극재와 음극재를 동시에 생산하는 국내 유일한 업체다. 배터리에 리튬을 공급하는 양극재는 용량과 출력을 결정하는 에너지원으로, 배터리 원가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포스코케미칼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공장 내부 전경.
포스코케미칼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공장 내부 전경.
○IRA로 합종연횡 ‘약한 고리’ 부각

포드가 포스코그룹에 양극재 공급을 전격 요청한 것을 놓고 자동차·배터리 업계에선 예정된 수순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 IRA 시행을 앞두고 ‘탈(脫)중국화’와 병행한 안정적인 배터리 소재 공급망 확보가 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IRA에 따라 완성차업체들은 내년부터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한 광물을 40% 이상 적용한 배터리를 장착해야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대당 7500달러)을 받을 수 있다. 이 비중은 매년 10%포인트 높아져 2027년엔 70%로 늘어난다. 배터리 부품은 내년부터 북미산을 50% 이상 써야 한다. 2029년엔 100%로 높아진다.

중국산 원자재와 부품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내 공급망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IRA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배터리 완제품 및 소재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 치열하게 경합 중인 국내 기업들이 IRA 해법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기업들의 배터리 공급 여건에 따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IRA가 배터리 소재 업체를 갑(甲)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자동차·배터리 시장은 크게 포드와 GM 동맹으로 양분돼 있다. 두 자동차 업체는 소재와 부품,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업체들과 잇따라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포드는 지난 7월 SK온과 배터리 합작사인 블루오벌SK를 출범시켰다. SK온은 삼원계 NCM9 배터리를 개발해 포드 전기차 F150 라이트닝에 공급하고 있다. SK온 배터리에 쓰이는 양극재는 국내 1위 양극재 생산업체인 에코프로비엠이 공급한다. 포드와 SK온,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7월 북미 양극재 생산시설 구축을 위한 공동투자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GM은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케미칼과 동맹을 맺었다. GS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는 지난 8월부터 배터리 셀 양산을 시작했다. GM은 포스코케미칼과도 지난 5월 8000억원을 투자해 캐나다에 하이니켈 양극재 합작공장인 ‘얼티엄캠’을 설립하기로 했다. 포스코그룹은 2012년 LG화학에 양극재를 공급하기 시작한 후 10년 넘게 배터리 소재 사업에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포스코케미칼 2차전지 사업 매출의 95% 가량이 LG에너지솔루션에서 발생할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문제는 GM 동맹과 달리 포드 동맹은 배터리 소재 상단에서 이른바 ‘약한 고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포드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에코프로비엠은 국내 1위 양극재 생산업체지만, 광물과 소재 밸류체인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한다. IRA 시행을 앞두고 최근 독일 업체와 수산화리튬 공급계약을 맺는 등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팔리 포드 CEO도 지난달 한국을 찾았을 때 최재원 SK온 수석 부회장을 만나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재 내재화 나선 포스코그룹

배터리 소재를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에코프로비엠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은 제련 시장에서 리튬 44%, 코발트 75%, 니켈 69%, 망간 95%를 차지하고 있다. 음극재에 쓰이는 흑연 공급비중은 채굴 시장에선 64%이며 제련 시장에선 천연흑연 100%, 인조흑연 69%에 달한다.
[단독] 포스코케미칼, GM 이어 포드에 수십조 규모 양극재 공급 추진
IRA 시행을 앞두고 포드는 2차전지 광물과 소재 전반에 걸친 밸류체인을 보유한 포스코그룹에 주목했다. 포스코케미칼은 그룹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가 지분을 투자한 리튬, 니켈 광산 등으로부터 광물을 공급받는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중국 업체에 의존했던 광물 제련·가공 작업도 국내 및 해외 공장을 통해 내재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배터리 광물과 소재는 가공 단계가 복잡해 어느 국가가 원산지인지를 규정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 채굴한 리튬 원광을 중국 업체의 제련·가공을 거쳐 한국 기업이 양극재로 제조하면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이 현재 IRA엔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밸류체인 전체를 내재화하겠다는 포스코그룹의 전략에 포드가 주목한 것이다. 포드가 기존 합종연횡을 깨고 포스코그룹에 양극재 공급을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앞서 포스코케미칼이 포드 배터리를 제조하는 SK온에 양극재 시제품도 제공했기 때문에 성능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가 투자한 아르헨티나 리튬 추출공장 및 염수저장시설 전경.
포스코가 투자한 아르헨티나 리튬 추출공장 및 염수저장시설 전경.
포스코그룹은 올 초부터 이런 장점을 앞세워 포드와의 협상을 타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포스코 고문으로 영입된 스티브 비건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핵심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당시 북핵 협상대표를 맡는 등 대표적인 ‘대북통’인 비건 고문은 10년 동안 포드에서 근무하면서 국제대관업무담당 부회장을 지냈다. 그룹 관계자는 “협상 초기에 비건 고문이 포드 고위 관계자를 연결해 준 데 이어 최근 한국을 찾아 배터리 사업 현황을 확인하는 등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포스코케미칼이 GM에 이어 포드와 장기계약을 맺어도 에코프로비엠엔 별다른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포드는 지난 7월 에코프로비엠 및 SK온과 체결한 북미 공동투자는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더욱이 에코프로비엠와 삼성SDI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미국 양극재 공장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전기차 시장에서 양극재 수요는 급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 시행을 계기로 미국 자동차 업체와 국내 소재업체 간 굳어졌던 기존 합종연횡의 틀이 깨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민/김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