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 점령지 네 곳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크림반도를 포함한 접경지 여덟 곳에는 이동 제한 조치를 내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고전하는 가운데 대응 태세를 강화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회의에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 헤르손, 자포리자에 20일을 기점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은 전쟁을 비롯한 국가 비상사태 시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헌법 효력을 일부 중지시키고 군사권을 발동할 수 있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푸틴 대통령은 크라스노다르, 벨고로드 등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 도시와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등 여덟 곳에 이동 제한령을 내렸다. 이번 조치는 러시아군이 수세에 몰린 가운데 나왔다. 세르게이 수로비킨 신임 러시아군 총사령관은 전날 러시아 국영 TV에 출연해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주변의 상황이 매우 어렵고 긴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결정을 배제하지 않고 시의적절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에 러시아가 헤르손에서 전면 대피 또는 전략적 후퇴를 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헤르손의 러시아군은 몇 주간 우크라이나군에 밀려 20~30㎞가량 후퇴했다.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 등 후방에 있는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미사일과 자폭 드론 공격을 퍼붓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최근 8일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발전소의 30%가 파괴돼 나라 곳곳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겨울이 다가오는 가운데 시민의 생존에 필요한 난방과 온수를 끊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화력이 떨어진 러시아를 이란이 지원한다는 의혹이 심화하자 서방 국가들은 이를 문제 삼고 나섰다. 이란산 자폭 드론을 활용한 러시아의 공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이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31호를 위반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 국무부는 18일 “이란이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도록 공격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강력한 제재 부과를 시사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