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기자회견서 "울산 생활 행복…한국 돌아와 하루하루가 소중해"
조현우 "최고의 주장·최고의 선수"…김태환 "MVP, 우승팀서 나와야"
'MVP 후보' 이청용 "거론돼 불편…더 활약한 선수들에 미안해"
"최우수선수(MVP)로 거론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감사한 마음도 크고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좀 (마음이) 불편합니다.

"
17년 만의 K리그 우승을 차지한 프로축구 울산 현대의 '캡틴' 이청용은 올 시즌 리그 MVP 후보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게 탐탁지 않다.

지난 18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이번 시즌 K리그1 MVP 후보 명단에는 김진수(전북), 신진호(포항), 김대원(강원)과 함께 이청용이 이름을 올렸다.

감독상과 MVP는 우승팀에서 가져가는 것이 '관례'다.

이청용이 현재 가장 유력한 MVP 후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청용은 19일 울산 현대 유튜브로 생중계된 우승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MVP감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날 이청용은 개인 사정으로 회견 장소인 울산현대축구단 클럽하우스를 찾지 못해, 화상 인터뷰를 통해 팬들과 취재진을 만났다.

이청용은 "MVP는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라며 "내가 벌써 수상한 건 아니지만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팀에서 더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시즌 눈에 보이는 활약상을 놓고 보면 이청용을 압도하는 울산 선수들이 있다.

'MVP 후보' 이청용 "거론돼 불편…더 활약한 선수들에 미안해"
공격포인트 측면에서는 엄원상이 팀 내 최다 득점(12골)·최다 도움(6도움)을 올렸고, 여름에 울산 유니폼을 입은 마틴 아담도 우승의 9할을 결정지은 전북과 마지막 맞대결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추가시간 '극장골'을 연사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청용은 기록(2골 2도움)에서 엄원상에게 크게 못 미친다.

아담만큼 인상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지도 못했다.

이청용은 "MVP에 대한 욕심은 없다.

시즌이 끝나지 않아 아직 K리그 우승 트로피도 못 만져봤다"며 개인의 영광보다는 팀이 먼저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자평과는 달리 주장으로서 이청용이 구심점 역할을 확실하게 해냈고, 이게 17년 만의 우승을 이끌었다는 게 구단 내부의 평가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팀 동료 조현우와 김태환도 이청용이 올 시즌 보여준 리더십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조현우는 "이청용 선수는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어떤 결정이든 어린 선수, 나이가 많은 선수 모두와 그 결정을 공유하고 이해시킨다"며 "경기력과 상관없이 항상 차분하다 그게 선수들의 경기력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MVP 후보' 이청용 "거론돼 불편…더 활약한 선수들에 미안해"
그러면서 "최고의 주장이었고, 최고의 선수였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조현우는 이청용이 한 시즌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준 경기력도 훌륭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들 우리 팀 경기를 봐서 알겠지만 이청용 선수는 '축구도사'다.

특유의 안정감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며 "무조건 MVP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본인도 기대를 많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환은 "(이청용은) 굉장히 따뜻한 주장이었다"며 "세심한 게 느껴졌다.

사소한 부분까지 다 챙겨줬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엄마 같은 주장이었다고 말하고 싶다"며 "MVP는 우승팀에서 나와야 한다.

우승을 한 팀에서 최고의 선수가 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이청용 선수"라고 말했다.

이런 후배들의 칭찬에도 이청용은 주장을 잘 따라준 선수단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이청용은 "주장으로서 많은 부분이 부족했다.

큰 문제가 없었던 건 내 주변에 훌륭하고 경험도 많아서 내 역할을 대신해줬던 여러 고참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선수들을 보며 나도 배우면서 더 열심히 했다"며 "경기장 안에서는 나도 가끔 쓴소리를 하곤 했다.

선수들이 좋게 받아줘서 그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MVP 후보' 이청용 "거론돼 불편…더 활약한 선수들에 미안해"
이청용은 유럽 생활을 마무리하고 2020년 3월 울산에 입단했다.

그해 울산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정상에 올랐으나 기대가 컸던 K리그에서는 팬들에게 우승의 기쁨을 선사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홍명보 감독-이청용 주장 체제로 재정비한 울산은 올 시즌 드디어 고질적인 '뒷심 부족'을 해결하고 우승 트로피를 드는 성과를 일궜다.

무려 17년 만에 이룬 우승인 만큼 울산 선수들은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태환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행복했고, 다음날도 행복했다.

운동이 즐겁다"고 웃었다.

그는 "세 번의 아픔을 딛고 다시 도전했는데, 이번도 안 됐다면 정말 축구를…"하고 말을 잇지 못하더니 "정말 이 팀을 떠난다는 각오로 매 순간 임했다"고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지 2년 만에 팀을 우승까지 이끈 이청용도 기쁘긴 매한가지다.

'MVP 후보' 이청용 "거론돼 불편…더 활약한 선수들에 미안해"
이청용은 "2년 전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하루하루가 특별하고 소중하게 다가왔다"며 "울산에서 생활이 행복하다.

좋은 감독님, 코치님들, 마음이 잘 맞는 우리 선수들과 훈련하고 경기하고, 또 승리하는 게 내게 즐거운 일"이라고 돌아봤다.

이어 "우승해서 또 즐겁지만 그게 아니라도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게 좋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매일 든다"면서도 "올해 우승까지 달리며 선수로서 늦은 나이에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느낀 한해였다"고 말했다.

간절히 우승을 바랐던 이청용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22 파이널라운드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우승 시 팬들과 캠핑을 가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질의에 이청용은 "실천해야죠"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면서 "아직 구체적 일정이나 장소는 정하지 못했지만, 좋은 자리를 만들어보겠다"고 웃었다.

이청용은 "일단 이번 주 주말에도 경기가 있다.

트로피를 드는 설렘으로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겠다"며 "17년이라는 시간 애타게 기다리고 응원해준 팬분들께 선물을 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