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부활의 불꽃'…파리를 달군 '불과 돌의 사나이'
1974년 이후 ‘10월의 파리’는 미술의 도시였다.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FIAC(국제현대미술박람회)가 그때 파리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메인 전시장 그랑팔레는 물론 도시 곳곳의 갤러리와 공원 모두 예술로 물들었다.

올해는 FIAC의 로고 대신 아트바젤의 표식이 파리 거리를 휘감았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바젤에서 시작한 아트페어가 ‘예술의 도시’를 48년 동안 지켜온 ‘파리의 자존심’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PARIS+PAR(파리를 넘어서)’를 부제로 단 아트바젤은 이렇게 올해 처음 프랑스에 상륙했다.
'이것은 부활의 불꽃'…파리를 달군 '불과 돌의 사나이'
‘아트바젤 파리’ 개막 하루 전날인 18일(현지시간) 파리에 집결한 세계 예술가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불과 돌의 사나이’ 우고 론디노네였다.

이날 그랑팔레 건너편에 있는 프티팔레에서 개막한 ‘물은 공기가 쓰지 않은 시. 아니다. 흙은 불이 쓰지 않은 시’ 전시는 수많은 관람객으로 가득 찼다. 저녁 칵테일 행사엔 힘 깨나 쓰는 세계 각국의 예술인 600명이 참석했다.
프티팔레 입구 광장에 설치된 세 점의 '수도승'
프티팔레 입구 광장에 설치된 세 점의 '수도승'
이탈리아계 스위스 작가인 론디노네는 대규모 조각과 영상, 회화 작업으로 유명한 ‘스타 작가’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강렬한 영상작품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을 처음 공개했다. 그의 상징적인 작품 ‘수도승(Munk)’ 세 점은 프티팔레 정문 앞 야외 광장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프티팔레는 1900년 프랑스가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었고, 1902년부터 파리 시립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자르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 덕분에 파리 시민들의 휴식처로 불린다. 론디노네는 이 건축물과 어우러지도록 자신의 작품을 설치했다.

전시는 총 3개 테마로 구성했다. 프티팔레 입구에는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하늘 위에서 춤추는 사람 ‘휴먼스카이’(2016)를 놓았다. 인간의 몸을 르네상스 회화 속 천사에 비유해 하늘과 구름 빛으로 채색한 6개의 몸을 하늘에 띄웠다.


전시장엔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오래된 조각상들 사이로 론디노네가 2009년 제작한 무용수 조각 시리즈 ‘누드(Nudes)’를 배치했다. 왁스와 흙으로 빚은 11개의 조각은 지치고 상처 나고 실의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프티팔레에서 최초로 공개된 우고 론디노네의 20분 분량 영상 작품 '번 투 샤인'.  /김보라 기자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프티팔레에서 최초로 공개된 우고 론디노네의 20분 분량 영상 작품 '번 투 샤인'. /김보라 기자
이들 작품은 프티팔레가 소장한 18점의 역사적 조각 사이에 놓였다. 과거와 현재, 신과 인간, 동작과 멈춤 등의 대비를 자연스러우면서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에릭 바르하겐 큐레이터는 “론디노네는 밤과 낮, 표정과 무표정, 안과 밖 등의 대조되는 것들을 함께 보여주며 시적인 여백과 반전을 거듭하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미술관 북쪽 파빌리온에 설치된 영상작업 ‘번 투 샤인’이다. 나무를 불에 태워 천장까지 높게 이어 붙인 원통형의 임시 극장 안은 후끈했다. 육각형 형태로 분할된 화면에 20분 동안 영상이 나왔다. 모로코 리야드 사막에서 격렬하게 춤추는 무용수들과 쿵쾅대는 드럼 비트, 민속 악기의 향연에 관람객들은 넋을 놨다.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모든 게 불에 타며 끝난다.

줄리엣 싱어 프티팔레 수석큐레이터는 “세 개의 테마를 가진 론디노네의 작품을 한 전시 공간에서 선보이는 건 처음”이라며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사람, 지친 듯 바닥에 앉아 있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 폭발하듯 춤추는 사람을 통해 삶에 관한 대서사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8일까지.

파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