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 실질심사 결과까지 885일...“투자자 재산권 침해”
20일 한국경제신문이 올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결과가 나온 코스닥 상장사 19개를 전수조사한 결과, 사유발생일로부터 최종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885일로 나타났다. 신라젠은 지난 12일 상장유지 결정이 나오기까지 887일이 걸렸다. 에스에이치앤엘(1933일)을 포함해 1000일을 넘는 기업도 6개에 달한다.현재 2년 이상 걸린 심사 때문에 묶인 돈은 해당 코스닥 기업의 시가총액 기준으로 1조2447억원에 달한다. 880일 넘게 심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코오롱티슈진 시가총액은 거래정지 직전 기준 5518억원이다.
실질심사와 거래정지가 장기화되자 투자자의 재산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정지제도의 원래 취지는 투자자들의 주의를 환기하고 문제 기업들에 공시를 요구해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는 것”이라며 “정지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질 경우 투자자 재산권을 오히려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움직임도 발생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세원정공 주주들을 대상으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 접수를 받고 있다. 장기간 거래정지로 투자자의 재산권이 침해됐다는 설명이다. 해당 기업은 지난 2019년 7월 24일 회사 임원의 업무상 배임혐의가 발생했다.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중인 현재까지 거래정지 중이다.
○“한계기업 퇴로 열어야”
심사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배경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하위시장과 장외시장 등이 제대로 구축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상장폐지는 기업들에 사형선고와 다름없다”며 “거래소도 이에 부담을 느껴 상장폐지 결정을 최대한 미룬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한계기업의 퇴로를 마련해야 실질심사 장기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주식시장의 경우 다수의 장외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에서 상장폐지된 기업들도 거래를 지속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한국보다 상장폐지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도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K-OTC, K-OTCBB 등 장외시장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장외거래는 제도권 밖 사설사이트와 불법 브로커를 통해 이뤄지는 실정이다.
실질심사 장기화 대책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정부 공약에 맞춰 한국거래소가 연내 실질심사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10~11월 시행세칙이 개정되면 재무관련 형식적 상폐 사유 발생 기업도 곧바로 상장폐지하지 않고 실질심사를 진행한다. 거래소 측은 “향후 기업 회생 가능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양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최세영 기자 seyeong202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