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로스는 미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몸에 붙여 날아오른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날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더 높이 날아오른다. 하지만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몸에 붙인 밀랍 날개는 더 빨리 녹아내렸고, 이카로스는 에게해에 떨어져 죽고 만다. 하늘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한 이카로스의 꿈은 한낱 물거품이 된다. 이처럼 인간은 수천 년간 중력에서 벗어나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욕망을 표출해왔다.

이카로스의 찰나 같은 꿈이었던 비행(飛行)은 이제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버스나 기차처럼 하나의 교통수단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하늘 위를 나는 것은 육상 교통과 비교할 수 없는 희열과 설렘을 준다. 두 손가락으로 세계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비행기 창문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스마트폰 지도와는 다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비행기는 파란 하늘이란 도화지 위에서 구름이라는 물감을 사용하는 하나의 붓이 되기도 하고, 까만 하늘 속 빛나는 별이 되기도 한다.

세계 최고이자 최대 파리 에어쇼

코로나19 사태 이전 마지막으로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서 열렸던 2019 파리 에어쇼 현장. 프랑스 공군의 ‘라팔’ 전투기들과 민항기들 뒤로 유럽우주국(ESA)의 아리안 4, 아리안 5 로켓 모형이 전시돼 있다. /파리에어쇼 제공
코로나19 사태 이전 마지막으로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서 열렸던 2019 파리 에어쇼 현장. 프랑스 공군의 ‘라팔’ 전투기들과 민항기들 뒤로 유럽우주국(ESA)의 아리안 4, 아리안 5 로켓 모형이 전시돼 있다. /파리에어쇼 제공
공중을 나는 비행기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면 에어쇼는 거대한 예술 전시회다. 세계 최초의 에어쇼는 제1차 세계대전을 불과 5년 앞둔 1909년 시작됐다. 유럽 패권을 다투던 프랑스와 독일은 각자의 수도에서 인류 최초의 항공 박람회를 열며 에어쇼 시대를 열었다.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두고 벌어지는 파리와 베를린의 자존심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초를 넘어 최대 에어쇼의 타이틀을 거머쥔 곳은 파리다. 에어쇼의 모태는 모터쇼다. 1908년 파리에서 열린 모터쇼는 전시장 일부를 비행기에 할당했다. 이듬해 파리 도심의 전시장 그랑 팔레에서 열린 항공박람회에 관람객들은 열광했다. 3주간 열린 박람회에 10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곳엔 찢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연기를 뿜으며 나는 곡예비행도, 수백 명이 탈 수 있는 대형 여객기도, 멋진 조종복을 입은 파일럿도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사람들이 품고 있던 비행의 꿈을 채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자동차 전시장의 한구석에서 잉태된 에어쇼는 이제 하늘 너머 우주를 향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직전 열린 2019년 파리 에어쇼에서는 세계 각국의 최첨단 전투기와 민항기 못지않게 유럽우주국(ESA) 아리안 로켓들에 관람객의 시선이 집중됐다. 예전 모터쇼 관람객이 전시된 비행기를 바라보며 꿈꿨던 항공 여행이 보편화된 것처럼 우주여행이 실현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줬다.

우주를 바라보는 인류의 시선은 전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파리 에어쇼에서는 세계 각국의 청소년(12~18세)이 직접 만든 미니 로켓으로 경쟁하는 대회도 열린다. 단순히 높이 쏘아올리는 것뿐 아니라 로켓에 넣은 세 개의 날계란을 깨지 않고 착륙시키는 능력을 평가한다. 이륙한 비행기가 착륙하듯, 지구를 떠난 로켓이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우주여행의 꿈에 성큼 다가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초음속 여객기의 꿈, 판버러 에어쇼

개발 단계에 있는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 ‘붐 오버추어’의 모습. /붐 슈퍼소닉 제공
개발 단계에 있는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 ‘붐 오버추어’의 모습. /붐 슈퍼소닉 제공
코로나19의 충격은 에어쇼도 피해 가지 못했다.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자 주요 에어쇼도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하늘길이 풀리자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높은 축제인 에어쇼도 날개를 폈다. 지난 7월 영국 햄프셔주 판버러공항에서 4년 만에 열린 판버러 에어쇼가 대표적이다.

이번 에어쇼에선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비행기가 소개됐다. 항공기 제작사 붐 슈퍼소닉이 개발 중인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 ‘붐 오버추어’의 새 디자인이 공개된 것이다. 2003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이전에 콩코드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런던~뉴욕 노선을 세 시간 만에 연결했다. 당시 영국항공의 광고 문구는 “떠나기 전에 도착하라”였다. 콩코드는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빨라 서쪽으로 이동하는 비행기의 창문에서 바라보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처럼 보였다. 영국인의 자존심이자 얼마 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의 전용기였던 콩코드를 오마주한 듯한 붐 오버추어의 등장에 이목이 쏠린 까닭이다.

판버러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 초음속의 또 다른 주인공은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였다. 블랙이글스는 국내 최초로 개발한 초음속 훈련기 T-50으로 영국 하늘에서 환상적인 ‘플라이바이(fly-by)’ 편대비행을 선보였다.

아시아 최대 싱가포르 에어쇼

국력, 그중에서도 군사력을 뽐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에어쇼는 민간 항공의 발전과 함께 대중 속으로 들어왔다. 전 세계 공군의 정예 조종사들과 대형 방위산업체 관계자부터 이카로스의 꿈을 지닌 아이들 손을 잡고 온 가족까지 하늘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모두 하나가 된다. 일반인에게는 금단의 땅인 활주로는 에어쇼를 찾는 사람들이 뛰놀며 지상과 상공의 비행기를 마음 놓고 구경하는 커다란 광장이 된다.

동남아시아 항공교통 허브인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에어쇼는 파리 에어쇼, 판버러 에어쇼와 함께 세계 3대 에어쇼로 꼽힌다. 2008년 처음 열린 싱가포르 에어쇼는 역사는 길지 않지만 단숨에 아시아 최대이자 세계 주요 에어쇼 반열에 올랐다. ‘항덕(항공동호인)’과 여행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는 비행기 구매 계약이 많이 성사된다는 점도 싱가포르 에어쇼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한항공이 세계 최대 여객기이자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 불렸던 에어버스380(A380) 기종 도입을 결정한 곳도 이곳이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