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니 주얼리 이야기 > 출간한
손누니 누니주얼리 대표
생활비 벌려 장사한 유학생
아일랜드 길거리서 좌판
즉석에서 귀고리 만드는
'주얼리 버스킹' 입소문
손 대표가 2011년 시작한 누니주얼리는 요즘 젊은 예비부부라면 다 알 만한 웨딩 주얼리 브랜드다. 올 들어서만 약 2000쌍의 신혼부부가 누니주얼리에서 결혼반지를 맞췄다.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맞춤형 서비스와 독특한 디자인이 그 비결이다.
나뭇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 달 표면…. 최근 유행하는 자연의 질감을 본뜬 결혼반지의 원조가 바로 누니주얼리다. 기존에 결혼반지라고 하면 매끈하고 빛나는 것들뿐이었다. 누니주얼리의 결혼반지는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손 대표는 “결혼반지는 하루만 끼고 마는 반지가 아니다”며 “유학 시절, 반지가 낡아도 굳이 표면을 갈아내지 않는 유럽 사람들을 보면서 세월의 흔적이 멋이 되는 디자인을 꿈꾸게 됐다”고 했다.
반지 하나라도 고객의 손 모양과 손가락 굵기, 피부색에 따라 색상, 반지 폭과 마감 스타일 등을 다양하게 택할 수 있다는 점이 누니주얼리의 특징이다. 가격 정보가 불투명한 업계 관행과 달리 누니주얼리는 모든 컬렉션 가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개성과 실속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부부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누니주얼리는 더현대 서울 등에 매장을 냈다. 최근에는 한남동에 공방과 쇼룸을 결합한 플래그십스토어도 열었다.
손 대표의 직업병은 사람을 만날 때는 손과 결혼반지부터 본다는 것. 그런데 정작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결혼반지가 없다. 누니주얼리 반지를 착용했을 때 불편한 점은 없는지 늘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남편도 제가 다른 반지는 끼지 않는 걸 알아서 청혼할 때 반지가 아니라 아예 다이아몬드 알을 건넸다”며 “그 다이아몬드로 목걸이를 만들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손 대표가 처음부터 자신만의 주얼리 브랜드를 꿈꾼 건 아니었다. 그는 “손으로 만드는 건 뭐든 좋아해 금속공예과에 진학했는데, 정작 열중한 건 록음악이었다”고 했다. 대학교 록밴드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급기야 ‘록 유학’을 위해 아일랜드로 향했다. 여기서 거꾸로 맞춤형 주얼리의 재미에 눈을 떴다.
이탈리아 금속 장인 파우스토 마리아 프란키를 만난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손 대표의 ‘코리안 라이브 주얼리’를 눈여겨본 이탈리아 친구가 ‘옆집 할아버지’ 프란키를 소개해줬다. 프란키는 로마 거리에 공공 조형물을 세울 정도로 세계적인 금속 장인이다. 손 대표는 대학을 마친 뒤 프란키의 공방에서 1년 남짓 일하며 ‘자신만의 디자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몇 개의 주얼리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끝에 누니주얼리 브랜드를 냈다. 그즈음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 디자인 상담을 해주던 게 창업으로 이어졌다. 투지를 불태우게 하는 사건도 있었다. 초창기 매장은 고즈넉한 삼청동 한옥마을에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카페에서 잡지를 뒤적이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던 중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뭇결을 모티프로 한 웨딩 주얼리 광고였다. 누니주얼리의 대표 컬렉션 ‘라이크 어 트리(like a tree)’를 그대로 베낀 디자인이었다.
손 대표는 “초창기 꿈꿨던 ‘욜로(YOLO·한 번 사는 인생, 현재를 즐기자)’의 마음을 그날 접었다”고 했다. 그는 “해당 업체보다 먼저 디자인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그 업체의 디자인 등록을 취소시켰지만, 디자인 도용과의 전쟁이 시작됐다”며 “내 디자인을 지키려면 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손님들이 점차 밀려들자 매장을 이전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그래도 틈틈이 해외 공모전에 도전하며 이름을 알렸다. 손 대표는 2020년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인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타기도 했다.
새로운 도전도 준비 중이다. 누니주얼리에 이어 두 번째 브랜드 ‘오네’를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웨딩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디자인을 담기 위해서다. 미혼이거나 이미 결혼한 사람도 접근하기 쉽도록 실험실에서 합성해 가격이 합리적인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도 활용할 계획이다. 내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파인주얼리와 디지털 아트를 결합한 전시를 열 예정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