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 좋다더니" 갸우뚱…평일에도 발 디딜 틈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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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자산시장 붕괴에도 소비 열기 '펄펄'
인플레이션, 고금리, 자산시장 냉각이란 ‘3중 악재’가 가계를 위협하고 있다. 하나 같이 집안 살림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요인들이다. 그런데도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계기로 불붙은 소비가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 ‘당연히 지갑이 닫힐 것’이란 통념이 맞아들어가지 않자 ‘소비 최전선’ 유통업계에서도 그 배경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일 ‘한경-비씨카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서울 주요 8대 상권인 강남, 명동, 성수, 여의도, 을지로3가, 이태원, 잠실, 홍대의 카드 결제액은 거리두기가 풀린 지난 4월 넷째 주(18~24일)부터 매달 증가 폭이 커지고 있다. 이 일대 8개 지하철역의 반경 1㎞ 이내에 있는 비씨카드 가맹점(음식·유흥업종) 결제액을 분석한 결과다.
4월 넷째 주 결제액을 100으로 놓고 집계한 결과 명동의 지난달 넷째주(18~24일) 결제액은 7월 102, 9월 108로 불어났다. 잠실과 홍대의 결제액은 지난 7월 100, 107에서 9월 111, 110으로 커졌다.
이 일대 소비 증가세는 20대가 이끌었다. 성수, 을지로, 이태원, 잠실, 홍대 5개 상권에서 지난달 20대 소비자의 결제액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이달 들어서도 이런 흐름은 꺾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물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백화점 가을 세일(지난달 30일~지난 16일) 결과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지난해 세일 때보다 25.0% 늘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매출도 각각 26.8%, 21.1%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엔데믹으로 살아난 소비심리가 여전히 버티는 가운데 코로나19로 고착한 소비·산업 구조 변화가 더해진 게 이런 흐름을 견인하는 것으로 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2020~2021년 정보기술(IT) 업계를 중심으로 급등한 임금 수준이 유지되는 가운데 아직 산업계에 큰 구조조정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서민들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허리띠 졸라매기가 시작된 만큼 지금과 같은 소비경기가 내년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대출금리 인상과 자산시장 냉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자가 늘고 있을 것으로 예상돼 와중에 가격이 오른 만큼 최악의 세일 실적을 받아들 것으로 우려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그가 담당하는 남성패션 부문의 가을 세일 매출은 1년 전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요즘 주요 상권의 인기 식당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댄다. 21일 오전 11시30분 찾은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식당가도 그랬다. 평일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 근무하는 샐러리맨들과 마포, 목동에서 몰려든 주부들로 매장마다 대기줄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짜장면 한그릇을 2만4000원에 파는 중식당 ‘도원스타일’의 경우 대기팀이 10팀을 훌쩍 넘겼다.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명동의 ‘레스케이프 호텔’ 로비도 체크인을 기다리는 투숙객들로 발디딜 틈 없었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서울에 사는 ‘호캉스족’과 지방에서 서울 나들이를 온 가족들 만으로도 서울 주요 호텔 객실 예약률이 80%를 넘는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한경-비씨카드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의 주요 8대 상권으로 꼽히는 강남, 명동, 성수, 여의도, 을지로3가, 이태원, 잠실, 홍대의 지난달 넷째주(19~25일) 비씨카드 결제액(지하철역 반경 1㎞ 내 음식·유흥 가맹점 기준)은 거리두기가 해제된 4월 넷째주(18~24일)보다 8% 증가했다.
이에 더해 2020~2021년에 걸쳐 우리 사회에 고착화한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정보기술(IT) 기업들 중심으로 급격히 인상된 임금이 여전히 높게 유지되는 가운데 기업들이 아직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의 상반기 1인당 평균 급여는 5298만원으로, 전년 동기(4778만원) 대비 10.9% 늘었다. 직원 수는 30만1881명으로 같은 기간 1년 전보다 1만2213명 증가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인플레 부담을 상쇄할 정도의 돈이 샐러리맨들 계좌에 매달 입금되고 있다”고 했다.
리셀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필수 소비재를 자산으로 인식하게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한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젊은이들은 신발, 가방 같은 고가 패션 아이템을 언제든 중고시장에서 되팔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지르고 보자’는 행태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 비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아 역(逆)자산효과가 덜 나타난다는 분석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식, 펀드 등과 달리 부동산은 평가손실이 잘 체감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며 “한국의 경우 역자산효과가 본격화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다”고 말했다.
이미 밑바닥에서 경기둔화가 진행 중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서민들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의 4월 이후 월별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대비)은 대개 2~3%에 불과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4%(지난 8월 기준)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물건가격 상승에 따른 매출의 자연 증가분을 제외하면, 실질 소비는 감소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박종관/이미경 기자 pjk@hankyung.com
20일 ‘한경-비씨카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서울 주요 8대 상권인 강남, 명동, 성수, 여의도, 을지로3가, 이태원, 잠실, 홍대의 카드 결제액은 거리두기가 풀린 지난 4월 넷째 주(18~24일)부터 매달 증가 폭이 커지고 있다. 이 일대 8개 지하철역의 반경 1㎞ 이내에 있는 비씨카드 가맹점(음식·유흥업종) 결제액을 분석한 결과다.
4월 넷째 주 결제액을 100으로 놓고 집계한 결과 명동의 지난달 넷째주(18~24일) 결제액은 7월 102, 9월 108로 불어났다. 잠실과 홍대의 결제액은 지난 7월 100, 107에서 9월 111, 110으로 커졌다.
이 일대 소비 증가세는 20대가 이끌었다. 성수, 을지로, 이태원, 잠실, 홍대 5개 상권에서 지난달 20대 소비자의 결제액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이달 들어서도 이런 흐름은 꺾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물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백화점 가을 세일(지난달 30일~지난 16일) 결과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지난해 세일 때보다 25.0% 늘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매출도 각각 26.8%, 21.1%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엔데믹으로 살아난 소비심리가 여전히 버티는 가운데 코로나19로 고착한 소비·산업 구조 변화가 더해진 게 이런 흐름을 견인하는 것으로 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2020~2021년 정보기술(IT) 업계를 중심으로 급등한 임금 수준이 유지되는 가운데 아직 산업계에 큰 구조조정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서민들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허리띠 졸라매기가 시작된 만큼 지금과 같은 소비경기가 내년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북적대는 백화점·식당·호텔
국내 한 백화점 패션담당 바이어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6일까지 이어진 올해 가을 세일을 앞두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이 컸다. 원부자재 가격 인상으로 가을·겨울(F/W) 의류 신상품 판매 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15% 올랐다.이런 와중에 대출금리 인상과 자산시장 냉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자가 늘고 있을 것으로 예상돼 와중에 가격이 오른 만큼 최악의 세일 실적을 받아들 것으로 우려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그가 담당하는 남성패션 부문의 가을 세일 매출은 1년 전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요즘 주요 상권의 인기 식당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댄다. 21일 오전 11시30분 찾은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식당가도 그랬다. 평일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 근무하는 샐러리맨들과 마포, 목동에서 몰려든 주부들로 매장마다 대기줄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짜장면 한그릇을 2만4000원에 파는 중식당 ‘도원스타일’의 경우 대기팀이 10팀을 훌쩍 넘겼다.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명동의 ‘레스케이프 호텔’ 로비도 체크인을 기다리는 투숙객들로 발디딜 틈 없었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서울에 사는 ‘호캉스족’과 지방에서 서울 나들이를 온 가족들 만으로도 서울 주요 호텔 객실 예약률이 80%를 넘는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한경-비씨카드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의 주요 8대 상권으로 꼽히는 강남, 명동, 성수, 여의도, 을지로3가, 이태원, 잠실, 홍대의 지난달 넷째주(19~25일) 비씨카드 결제액(지하철역 반경 1㎞ 내 음식·유흥 가맹점 기준)은 거리두기가 해제된 4월 넷째주(18~24일)보다 8% 증가했다.
○‘소비 미스터리’ 이유는
금리인상, 자산시장 한파, 인플레이션이라는 3중 악재를 감안할 때 이런 흐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대출이자는 늘고, 보유자산은 쪼그라드는데, 물건값까지 올랐으니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통념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아스러운 흐름의 배경으로는 4월부터 시작된 엔데믹발(發) 소비 심리 개선세가 아직 버티고 있다는 게 가장 흔하게 제시된다.이에 더해 2020~2021년에 걸쳐 우리 사회에 고착화한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정보기술(IT) 기업들 중심으로 급격히 인상된 임금이 여전히 높게 유지되는 가운데 기업들이 아직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의 상반기 1인당 평균 급여는 5298만원으로, 전년 동기(4778만원) 대비 10.9% 늘었다. 직원 수는 30만1881명으로 같은 기간 1년 전보다 1만2213명 증가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인플레 부담을 상쇄할 정도의 돈이 샐러리맨들 계좌에 매달 입금되고 있다”고 했다.
리셀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필수 소비재를 자산으로 인식하게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한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젊은이들은 신발, 가방 같은 고가 패션 아이템을 언제든 중고시장에서 되팔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지르고 보자’는 행태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 비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아 역(逆)자산효과가 덜 나타난다는 분석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식, 펀드 등과 달리 부동산은 평가손실이 잘 체감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며 “한국의 경우 역자산효과가 본격화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다”고 말했다.
○“소비 둔화 시작됐다”
실상이 이렇더라도 지금 같은 활황이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한국은행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경기 둔화 및 금리 상승의 속도와 그 폭에 따라 향후 민간소비 둔화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민간소비 증가율 감소폭은 0.02∼0.13%포인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이미 밑바닥에서 경기둔화가 진행 중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서민들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의 4월 이후 월별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대비)은 대개 2~3%에 불과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4%(지난 8월 기준)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물건가격 상승에 따른 매출의 자연 증가분을 제외하면, 실질 소비는 감소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박종관/이미경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