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다니다 퇴직한 김모씨(71)는 지난해 운전면허증을 땄다. 2017년 면허증을 반납한 이후 4년 만이다. 퇴직 후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 택시회사 취직을 위해 면허증을 다시 취득한 것이다. 김씨는 “전문 자격증도 없고 나이를 먹다 보니 할 일이 운전대를 잡는 것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운전면허를 딴 고령자가 지난 5년 새 50%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자 운전 사고도 급증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계 문제 해결해야”

막막한 생계에…다시 운전면허 따는 노인들
21일 경찰청에 따르면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만 65세 이상 고령자는 430만4696명(지난 9월 말 기준)에 달한다. 운전면허를 소지한 고령자가 279만7409명이었던 2017년에 비하면 53.8% 증가한 규모다. 전체 운전면허 수가 2017년 3166만5393명에서 3406만8492명으로 7.5% 늘어나는 데 그친 것에 비하면 고령자 운전면허 수 증가세는 급격하다. 만 65세는 도로교통법상 고령자를 나누는 기준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회 구조적인 원인으로 고령 운전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차적으로는 고령 인구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 국내 만 65세 이상 인구는 2017년 735만6106명에서 901만8412명으로 22.59% 늘었다.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고령자 면허소지자 증가 속도는 이 추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전문가들은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고령자의 고육지책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36.9%는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 18.7%는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택시, 화물차 운전 등 운송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노인이 젊은이보다 크게 뒤떨어지지 않고, 진입 장벽도 낮다”며 “노인 복지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노인들의 선택지가 적은 상황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고령 운전자 사고도 덩달아 늘어

고령 운전자 사고도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순발력이 떨어지는 만큼 사고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1~9월 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 건수는 2만4538건이다. 2017년(1만9536건)보다 25.6% 늘어난 수준이다. 교통체계 발달, 교통 문화 개선 등으로 전체 사고 건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를 감안하면 두드러진 증가세라는 분석이다. 전체 사고 건수는 같은 기간 10.2%(2017년 15만9846, 올해 14만3474) 줄었다.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인센티브제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를 줄이고자 면허를 반납하면 현금 등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운용한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교통카드 등 지원 액수를 10만원에서 최대 30만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면허를 딴 고령자들이 단순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면허를 반납하진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국내 노인 일자리 질이 지속해서 나빠지는 상황”이라며 “노인 일자리를 다양화하고 이들의 생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