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관 때 코로나19 대응 호평…재벌가 부인은 세금 문제 '구설'
42세로 210년만에 최연소 기록…총리·런던시장 모두 비백인
엘리트 코스 거친 1.2조 갑부…수낵, 영국 첫 인도계 총리
영국의 새 총리로 결정된 '40대 기수' 리시 수낵(42) 전 재무장관은 보수당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데다 천문학적 재산을 보유한 재벌가 부인을 둔 '금수저' 정치인이다.

인도계 힌두교도인 수낵 전 장관은 비(非)백인으로서는 영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총리에 오르게 됐으며,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 기록까지 함께 세우게 된다.

영국 보수당 대표 후보 등록 마감일인 24일(현지시간) 수낵 전 장관은 단일 후보로 당선이 결정됐다.

전날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출마는 옳은 일이 아닌 것 같다"며 먼저 물러난 데 이어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하고 빠졌다.

수낵 내정자는 지난여름 선거에서 리즈 트러스 총리에게 패했으나 재도전 끝에 성공했다.

트러스 총리의 '자책골'로 7주 만에 기회를 얻었다.

그는 300여년에 걸친 영국 내각 역사상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백인이 도맡아온 총리 자리를 과거 대영제국 식민지 혈통의 인도계로서 됐다.

이로써 영국은 총리와 런던 시장을 모두 유색 인종이 맡게 됐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파키스탄계 무슬림이다.

1980년 5월생으로 만 42세인 그는 1812년 로버트 젠킨슨(만 42년 1일) 이후 최연소 기록도 세운다.

취임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과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44세였고 전임 리즈 트러스는 47세, 보리스 존슨은 55세였다.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수낵 내정자는 의사 아버지와 이민 1.5세인 약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지난 선거운동 내내 동아프리카에 살던 외조모가 새로운 기회를 찾아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이주한 이야기를 강조했다.

영국 최고 명문 사립고교와 옥스퍼드대 철학·정치·경제(PPE) 전공,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MBA)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며 금융계로 진출해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헤지펀드 파트너 등으로 일했다.

2015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했고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지지·존슨 전 총리 지지 노선을 걸었다.

2020년 2월에는 존슨 전 총리 내각에서 요직인 재무장관으로 발탁됐다.

영국 정치인으론 처음으로 부자 순위에 들 정도로 부유한 수낵 내정자의 재산도 눈길을 끈다.

더 타임스 올해 영국 부자 명단에서 수낵 내정자 부부 당시 기준 자산 7억3천만파운드(현재 환율 기준 약 1조1천900억원)로 222위에 올랐다.

로이터 통신은 "스탠퍼드대 시절 만난 부인 아크샤타 무르티는 아웃소싱 대기업 인포시스를 창업한 '억만장자' 인도인인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수낵 전 장관이 신고한 자산 대부분은 부인이 보유한 인포시스 지분이다.

군살 없이 관리한 몸에 딱 맞는 고급 양복을 갖춰 입은 모습은 이런 배경을 더욱 강조한다.

AFP 통신은 "그는 인스타그램에 친숙한 외모로 '섹시한 리쉬'(Dishy Rishi)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전했다.
엘리트 코스 거친 1.2조 갑부…수낵, 영국 첫 인도계 총리
그러나 수낵 전 장관은 불과 작년까지 미국 영주권을 지녔다는 점이 알려지는 등 신변에서 크고 작은 잡음도 잇따랐다.

총리실 회의 전에 잠깐 열린 존슨 전 총리 생일파티에서 자리를 지켰다가 봉쇄 중 방역규정 위반으로 이들 부부와 함께 벌금을 부과 받았다.

특히 올해 초 인도 국적인 부인이 송금주의 과세제를 이용해서 해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은 점이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이는 영국 장기체류 외국인들이 매년 일정 금액을 낼 경우 해외 소득을 영국으로 송금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 제도다.

수낵 전 장관이 부인이 미래에 부모를 돌보러 귀국할 계획이 있으므로 제도를 이용할 자격이 있다고 반발했으나 민심은 싸늘했다.

당시 그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증세를 추진하던 중이어서 더욱 논란이 됐다.

그는 코로나19로 늘어난 빚을 갚아야 한다면서 법인세율 인상(19→23%)을 발표했다.

영국은 2020년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3천억파운드(490조7천500억원) 넘게 조달했다.

그는 또 일종의 소득세인 국민보험(National Insurance) 분담금률을 1.25%포인트 올렸다.

영국의 무상의료 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코로나19로 인해 떠안은 부담을 해소하고 사회복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에 관해서는 당 안팎에서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으나 트러스 총리가 택했던 정반대 정책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면서 수낵 전 장관의 노선이 옳았다는 사후적 평가도 나온다.

내각 경험이 길지 않은 수낵 전 장관의 가장 큰 성과는 코로나19 대응이었다.

그는 영국 경제가 봉쇄로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유급휴직 등 적극적 지원 정책을 펼쳐 호평을 받고 차기 주자로 도약했다.

그러나 수낵 전 장관이 지난번 선거에서 원내 경선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도 당원 투표에서 패한 데서 보듯 밑바닥 당심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의 결정적 약점으로 꼽힌다.

트러스 총리가 내놓은 달콤한 감세를 통한 성장 정책이 '동화 같은 얘기'라는 그의 지적이 당시 당원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상식적인 대처주의자'라면서 세금을 줄이기 전에 먼저 인플레이션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내각에서 가장 먼저 사표를 던져서 사임을 촉발한 '배신자' 이미지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치권 한 인사는 "아무도 공개적으로 수낵을 인도계라서 뽑지 않는다고 말하진 않지만 당시 선거 결과를 보면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