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 모습. /뉴스1
# 경기도 외곽 지역의 한 편의점. 입고되기 무섭게 팔려나가던 ‘포켓몬빵’이 평소와 달리 쌓이기 시작했다. 점주는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아 단골에게 서비스로 하나 내줬더니 ‘불매운동 중이라 안 받겠다’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 번화가에 위치한 한 파리바게뜨 매장은 지난 주말 동안 장사를 대부분 공쳤다. 인근 세 곳의 빵집 중 가장 장사가 잘되던 매장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엔 달랐다. 이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모 씨(23)는 “평소 매출의 절반이 빠진 것 같다. 평소처럼 물량을 들여왔는데 사장님이 당황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SPC 불매운동’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SPC그룹 계열사 제빵공장 근로자가 근무 중 사망한 데 이어, 또 다른 계열사 근로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까지 발생해 엎친 데 덮쳤다. 다소 뒤늦은 경영진 사과 등 후속 대응도 불매운동 움직임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다. 사건 초기 불매운동이 움트기 시작했을 때는 ‘용두사미’를 예측한 이들이 많았지만, 회사의 미숙한 조치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매운동 움직임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000여 가맹점 불매운동 영향권

24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SPC 불매’ ‘#SPC 불매운동’ ‘#멈춰라 SPC’ 등의 해시태그를 단 불매운동 관련 글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또 다른 근로자가 다쳤다. 더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든 물건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 “피로 만든 제품을 먹지 않겠다”며 SPC그룹 계열사 브랜드 리스트를 공유했다.
서울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 모습. /뉴스1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이 브랜드의 가맹점들은 평소 대비 20~30%가량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SPC가 운영하는 파리바게뜨 단일 매장만 전국 3420여개(2019년 기준)에 달한다.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삼립, 파리크라상, 샤니, 쉐이크쉑, 라그릴리아 등 각종 SPC 계열 업종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불매 리스트’에 오른 점을 감안하면 6000여 곳의 가맹점들이 불매운동에 따른 매출 감소 여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고 후 SPC그룹 대응도 불매운동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SPC그룹은 사고로 숨진 20대 여성근로자 A 씨의 빈소에 상조 지원품으로 빵 두 상자를 전달해 인간적 존중이 없다는 질타를 받았다. 게다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발표 직후 또 다시 계열사 직원의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하면서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파리크라상과 SPL 등 SPC 주요 계열사에서 최근 5년 새 산업재해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파리크라상과 피비파트너즈, 비알코리아, SPL 등 SPC 계열사 4곳에서 산재 피해를 당한 사람은 2017년 4명에서 2021년 147명으로 늘었다. 올해 9월 기준으로도 115명의 재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10개 살 것 4~5개만 사면 된다"

이번 SPC 불매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장기화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다는 점. 무조건 SPC 제품을 사면 안 된다는 차원을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SPC 제품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불매운동이 오래 못갈 것”이라며 “평소 10개 사던 것을 4~5개만 산다고 생각해도 충분하다. 그런 움직임이 계속되면 결국 기업은 타격을 입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샤니 제빵공장 모습. /뉴스1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샤니 제빵공장 모습. /뉴스1
SPC 계열사로부터 물건을 납품받는 브랜드까지 불매운동 하자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일례로 편의점 PB상품 가운데 빵, 샐러드, 샌드위치 등 SPC 제조상품이 적지 않다. SPC가 만든 빵을 사용하는 햄버거, 샌드위치 매장은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햄버거 프랜차이즈 본사에는 SPC 제품을 사용하냐는 고객 문의가 쏟아졌다.

한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SPC를 거래처로 둔 경우 이 사실이 알려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라면서 “사실 시중 제과·제빵 관련 상품 중 SPC와 거래하지 않는 기업이 드물 정도”라고 했다. 이어 “불매운동 타깃이 된다 해도 당장 거래처를 바꾸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SNS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세대 간 벽도 허물어졌다.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20~40대가 불매운동 초기부터 합류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10대 청소년이나 50~60대 중장년층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대학생 딸을 둔 양모 씨(61)는 “딸이 뉴스를 본 후 SPC 제품은 피해야 한다면서 SNS에서 본 불매 리스트를 카톡으로 공유해줬다”고 했다.

울고 싶은 가맹점주들 어쩌나

경기 평택시 SPC계열 SPL 평택공장의 모습. /뉴스1
경기 평택시 SPC계열 SPL 평택공장의 모습. /뉴스1
불매운동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지만 일각에선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애꿎은 가맹점주”라며 소상공인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파리바게뜨나 베스킨라빈스 등을 불매하면 결국 가맹점주의 매출만 떨어진다는 것이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협의회는 앞서 낸 입장문에서 “이런 분노가 생업을 이어가는 일반 가맹점들에게는 큰 고통”이라며 “본사에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 안전경영강화 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불매운동 하는 소비자를 직접 접하는 건 주로 가맹점주”라면서 “기업도 국내외 평판이나 이미지가 추락하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겠지만 가맹점주는 고객이 줄면서 폐업 등 생계를 위협받는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SPC그룹은 가맹점 피해 보상과 관련해 점주들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은 가맹점주들과 만나 지난 20일부터 식빵, 단팥빵 등 완제품에 한해 반품 처리하기로 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