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수자 권리 후퇴하고, 차별 노골화될라" 불안감
'기독교도 엄마' 자처 극우총리에 떨고있는 이탈리아 성소수자들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중시하는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45)가 이탈리아 총리로 취임하면서 이탈리아 성 소수자들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멜로니 총리가 그동안 성 소수자들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을 여러 차례 드러내 온 터라 새 정부에서 성 소수자들의 권리가 후퇴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이 노골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 파트너와의 사이에 6살배기 딸 하나를 둔 멜로니 총리는 그동안 '크리스천 엄마'를 자처하면서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옹호해온 걸로 유명하다.

그는 아이는 남성과 여성으로 이뤄진 부모에 의해 양육돼야 한다는 관점을 거듭 강조해왔다.

최근 의회의 상원과 하원 의장 모두 극단적 보수주의자들로 채워지는 등 국가기관 전반이 부쩍 보수화된 것도 성 소수자들의 걱정을 키우고 있다.

상원에서는 파시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숭배하는 극우 정치인 이냐치오 라 루사가 새 상원의장에 선출됐다.

하원 의장으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낙태와 동성 간의 결합,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에 대해 확고한 반대 입장을 피력해 여러 차례 논란에 휘말린 전력을 지닌 로렌초 폰타나가 뽑혔다.

'기독교도 엄마' 자처 극우총리에 떨고있는 이탈리아 성소수자들
로마 가톨릭의 본산인 교황청을 품고 있는 이탈리아는 가뜩이나 서유럽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포용도가 가장 낮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동성 커플에게도 배우자로서의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동성 결합법이 2016년 서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통과됐으나 서방 선진국에서 폭넓게 허용되고 있는 동성 결혼은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동성 파트너의 자녀 입양을 허용하는 법 조항도 가톨릭교회와 우파 진영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고, 동성 커플의 인공수정도 금지하고 있어 자녀를 갖기 원하는 동성 커플은 할 수 없이 해외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리모 역시 전면 금지돼 있는데, 멜로니 총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외에서 대리모를 찾는 것도 불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시칠리아 섬 동부 카타니아에서 동성 파트너와 두 자녀를 기르고 있는 모니카 사보카는 "중세로 돌아간 듯한 이런 인식은 충격적"이라며 "이탈리아 총선 이후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사보카 커플은 과거 동성 결합법의 폐지 또는 대폭 개정을 주장해온 에우제니아 로첼라가 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을 특히 염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는 자신이 동성애 혐오론자가 아니며, 동성 결합법을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으나, 그의 집권으로 성소수자들을 겨냥한 공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작년엔 게이나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의 성 소수자 및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뼈대로 한 성 소수자(LGBTQ) 혐오 반대 법안이 우파 진영의 반대로 상원 표결에서 부결돼 결국 폐기되기도 했다.

지난달 총선을 앞두고 사르데냐 섬에서 열린 멜로니 총리의 선거 유세에 참석해 동성 결혼 합법화를 요구해 주목을 받았던 마르코 마라스는 동성 결합을 주관하는 지자체 수장이 양심에 거리낀다는 이유 등으로 동성 결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멜로니 정부가 법 개정을 시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