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어제 윤석열 대통령의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하면서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신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윤석열 정부 규탄’ 시위를 벌였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특검 수용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예산안에 협조하기 어렵다고 엄포를 놓은 마당이어서 다음주 시작되는 예산안 심사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 입만 열면 ‘민생’을 강조하던 정당이 나라 살림을 정쟁의 볼모로 삼아도 되는지 묻고 싶다.

1988년 시작된 예산안 시정연설은 예산 편성의 취지와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설명하고 여야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로,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국회법 84조 1항엔 ‘(의원들은) 예산안에 대해서는 본회의에서 정부의 시정연설을 듣는다’고 규정돼 있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것도, 의원들이 이를 듣는 것도 기본 의무인 것이다. 여야 간 정쟁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야당이 대통령의 시정연설만큼은 한 번도 보이콧하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 민주당이 이런 법적 책무와 관례를 깨버렸다.

민주당이 시정연설을 보이콧한 것은 검찰의 민주당사 압수수색 때문이라고 한다. 이재명 대표는 “국민과 헌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선전포고”라며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진행된 정당한 법적 절차를 두고 ‘야당 말살’ 프레임을 거는 것은 명분이 없다. 더욱이 검찰 수사와 시정연설과는 아무 연관성도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법치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국회 본연의 역할마저 내팽개친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은 이 대표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든 당력을 쏟아부으며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검찰 수사 대상은 당무와 무관한 이 대표와 측근들의 과거 개인 의혹인데도 이러는 것은 ‘이재명 사당’임을 자인하는 꼴이며, 권위주의 시대로 시곗바늘을 확 돌려놓은 것이다. 국민은 개인 비리 의혹에 대해 ‘방탄막이’ 역할을 하라고 과반 의석을 준 것이 아니다. 민주당은 부끄러운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