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TV 보급, 일본 대중문화 개방,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등장, 3D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 확산 등 환경의 변화에 따라 때로는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때로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들이 인기를 얻었다. 외국 애니메이션 유행 속에서도 우리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과 교감하고, 정서를 공유하며 굳건히 제자리를 지켜왔다. 1980년대에는 ‘달려라 하니’ ‘아기공룡 둘리’, 1990년대에는 ‘날아라 슈퍼보드’ ‘영혼기병 라젠카’, 그리고 2000년대에는 ‘뽀롱뽀롱 뽀로로’ 등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돋는 작품이 대표적 우리 애니메이션이다. 최근의 우리나라 대표 애니메이션을 꼽는다면 ‘신비아파트’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신비아파트는 호러라는 신선한 소재, 치밀하고 확장성이 넓은 세계관,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통해 우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처음 기획할 때는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다양한 사연을 가진 귀신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무서운 이야기 안에 우정이나 가족애와 같은 긍정적 가치관을 잘 녹여내 반대와 장애를 극복했다. 그렇게 시작된 신비아파트는 애니메이션으로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달성하며 시즌 4까지 이어지고 있고,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완구는 물론 웹드라마, 게임, 출판, 뮤지컬 등 전방위로 확장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애니메이션은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어린이들은 더 이상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TV 편성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채널 시청률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대표적 애니메이션 채널들의 시청자 수는 10년 전과 비교해 10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
최근 드라마, 영화, 음악 등 K콘텐츠가 글로벌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애니메이션은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탓에 K콘텐츠의 글로벌화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간 우리 애니메이션은 완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쉬운 영유아용 애니메이션에 편향되면서 시청자 확대나 글로벌로의 확장에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다. 거기에 팬데믹과 미디어의 변화가 더해지며 애니메이션 소비가 감소해 성장이 위축됐고, 제작 인력이 게임 등 다른 산업으로 이탈하면서 제작 역량이 약화됐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을 오랜 기간 지원해 온 공공기관들마저 지원을 줄이면서 어려움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그럼에도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일본 출판만화를 발판으로 발전한 것처럼 우리나라 웹툰이 성장하면서 우리 애니메이션의 토양이 강해지고 있다. 또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우리 애니메이션이 글로벌로 더 쉽게 유통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수상한 많은 작품이 보여줬듯 우리의 기획력과 기술력은 글로벌에서 경쟁하는 데 손색이 없다. 혼돈과 변화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이 한류의 핵심 분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추억을 온전히 다른 나라에만 맡기지 않기 위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종민 CJ ENM IP개발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