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치 지도자 중 문화혁명의 광풍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현존 인물만 보더라도 장쩌민 전 주석은 열발전기계 연구소장으로 있던 중 수용소로 보내져 2년간을 삽질하면서 보냈다. 부패 스캔들로 축출된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는 홍위병으로 활동하면서 중국 공산당 8대 원로의 한 사람인 부친 보이보의 목을 밟고 비판했던 인물이다. 얼마 전 중국공산당 당대회 폐회식 중 돌연 퇴장해 화젯거리가 된 후진타오 전 주석이 그나마 수력발전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덕에 별 고초를 겪지 않은 운 좋은 경우다.

문혁 시절의 고통을 트라우마가 아닌 정치 인생의 큰 자산으로 여기는 흔치 않은 경우가 있는데, 바로 시진핑 주석이다.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의 아들인 시진핑은 15세 때 산시성 옌안시 산하의 산골 오지 량자허로 하방당해 7년간 육체노동을 하면서 농민의 삶을 체험했다. 주석이 돼 량자허를 다시 찾은 그는 “내 인생의 첫 시기에 모든 것을 가르쳐준 곳”이라고 했다. 이번에 서열 7위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한 리시 광둥성 서기는 량자허를 관광을 겸한 ‘시진핑 성지’로 조성하면서 시진핑의 환심을 산 이후 고속 승진 가도를 달렸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의 한청훤 작가 표현대로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마오쩌둥을 추앙하는 시진핑에게 각인된 마오의 대표적인 유산이 ‘공동부유론’이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주도한 사상이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이라면, 공동부유론은 마오쩌둥이 내건 분배와 평등의 사회주의 기본정신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중국 내 신(新)마오쩌둥주의자(neo-Maoist)들이 시진핑의 3연임을 열렬히 환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진핑 집권 3기가 열리자마자 중국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고,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시진핑 장기 독재의 의미를 시장이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를 더 긴장시키는 것은 대만 무력 통일 등 ‘중국몽(中國夢)’ 민족주의의 발호다. 우크라이나를 핵 볼모 삼아 자유 진영을 위협하는 푸틴처럼, 또 하나의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국면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