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돈맥경화' 심화…공기업 회사채도 속속 '유찰'
경영난 가중에 '비상경영'…'금리 급등'에 자금조달도 차질 예상
레고랜드 후폭풍…지자체·공기업도 '돈줄' 말랐다
채권시장 자금경색을 부른 '레고랜드 사태' 후폭풍이 자치단체와 지방공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지자체도 못 믿는다'는 불신이 시장에 급속히 퍼지면서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압박받는 지방 공기업의 경영 상황에 '비상등'이 켜졌다.

벌써 우량 공기업이 발행한 채권의 유찰 사례가 나오고 금리가 급등하는 등 '돈맥경화' 현상이 확산하면서,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대규모 개발 사업의 차질 또한 불가피해 보인다.

◇ 신용등급 'AA+'도 투자자 못 구한다
27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인천도시공사는 최근 500억원 규모로 3년물 공사채를 발행하려고 했으나, 투자자를 찾지 못해 계획을 접었다.

인천도시공사 채권 신용등급은 'AAA'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AA+'로 우량 공사채에 속하지만, 목표액의 불과 20%인 100억여원의 자금만 들어왔다.

공사는 최근 불거진 레고랜드 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공사채 유찰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본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발행한 2천50억원 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보증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채권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었다는 것이다.

광역자치단체도 지급을 보증하지 못하겠다고 손을 터는데, 공기업의 채권에 선뜻 손을 내미는 투자자가 있겠냐는 분석이다.

경기도 과천도시공사 또한 3기 신도시 사업 중 하나인 과천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자 최근 6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나, 이중 400억원은 유찰됐다.

과천도시공사에서 발행한 회사채가 유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과천도시공사 관계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강원도 발 이슈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며 "내일도 유찰되면 낙찰될 때까지 회사채를 발행해보려고 한다"고 절박한 상황을 전했다.
레고랜드 후폭풍…지자체·공기업도 '돈줄' 말랐다
◇ "가뜩이나 어려운데"…공기업 '비상경영' 돌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잿값 상승, 금리 인상 등으로 경영난에 봉착한 공기업들은 이번 레고랜드 사태로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먼저 이번 사태가 불거진 강원도 산하의 공기업인 강원도개발공사(GDC)는 최근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미 강원도개발공사는 대규모 리조트와 동계 스포츠 지구를 조성하는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사업'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빠진 상태였다.

1조6천325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고도 분양 실패 등으로 1조189억원을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아 도 재정에도 부담을 줬다.

최근 공개입찰 끝에 KH강원개발에 7천115억원에 리조트를 매각했지만, 지난달 기준 공사 부채는 6천784억원, 부채 비율은 60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교통공사 또한 도시철도를 포함한 대중교통체계 지표가 전반적으로 악화하면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김기혁 대구교통공사 사장은 "대구시의 대중교통지원금이 지난해 4천122억원에서 올해는 5천253억원으로 1천131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대중교통체계의 과감한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구교통공사는 얼어붙은 시장 상황 속에 간부급 관리자를 10% 줄이고, 유사 기능을 통합하는 등 경영난 해소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밖에 자본잠식률이 48%에 이르는 부산관광공사와 2007년 창립 이래 지난해 처음으로 11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본 울산도시공사 등 적자 공기업들은 경영 상황을 진단하며 레고랜드 사태가 부른 시장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레고랜드 후폭풍…지자체·공기업도 '돈줄' 말랐다
◇ "지자체도 못 믿어"…신뢰 하락에 금리↑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공공기관 신뢰도 하락이 금리 급등이라는 악재로 이어지면서 지자체와 공기업이 추진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춘천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26일 "레고랜드 사태로 동춘천산업단지 개발 사업이 보증 채무의 3배를 넘는 수준의 이자 부담을 요구받게 됐다"고 밝혔다.

춘천시는 2010년 동춘천산업단지 개발을 위해 봉명테크노밸리를 설립했고, 545억원의 보증 채무가 발생했다.

순차적으로 채무를 갚아 현재 162억원이 남아있는 상태다.

하지만 레고랜드발 금융위기 사태로 인해 지자체 채무 보증에 대한 신뢰도까지 하락하면서 춘천시가 높은 이자 부담을 떠안게 됐다.

최근까지 5.69% 금리로 빌려 쓰다가 상환일을 내년 1월까지 3개월 연장하는 과정에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두 배 이상 높은 무려 13%의 금리로 투자증권과 합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10여 년째 표류 중인 경기도 경제자유구역청의 평택 현덕지구 개발사업도 최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감정평가 및 보상 협의 절차 개시 의무 미이행'을 이유로 취소되며 삐거덕거리고 있다.

새로운 민간사업자 공모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리가 올라 이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투자자를 찾지 못해 공사채 발행 계획을 접은 인천도시공사 또한 고금리 상황에서 금융부채를 줄이겠다는 계획이어서, 검암역세권 개발과 3기 신도시인 계양테크노밸리 건설 사업 등의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손상원 이해용 고성식 양영석 홍현기 이덕기 허광무 최종호 오수희 정경재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