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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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자동차가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생산관리, 출고, 포장 등 간접공정에서 2년 넘게 일한 사내하도급 근로자도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유통업 등 하도급 구조가 관행인 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간접공정 하도급 근로자도 정규직”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와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7일 현대차·기아 공장에서 도장, 생산관리 등 업무를 수행한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담당한 모든 공정에서 파견법상 근로자 파견 관계가 성립한다고 봤다. 현대차·기아가 사내협력업체에 실질적인 감독과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는 차체, 도장과 같은 직접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생산관리, 출고, 포장 등 컨베이어벨트를 사용하지 않는 간접공정도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간접 생산공정은 작업 소요 시간에 따른 시간당 생산 대수, 세부 업무별 투입 인원 등을 전부 피고가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완성차 불법 파견 소송에서 간접공정까지 불법 파견으로 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현대차·기아에 원고들이 직고용됐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과 실제 받은 임금의 차액인 107억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원고로 참여한 근로자 430명 가운데 2차 협력업체 소속으로 생산관리 업무를 담당한 3명과 정년이 지난 일부 원고의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대차·기아 생산공장에서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 일한 근로자에게 파견 관계가 성립하는지를 놓고 공정 전반의 성격을 광범위하게 판단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제조업 도급’ 종말 오나

대법원은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사실상 파견 노동자라는 판결을 계속 내놓고 있다. 대법원은 2010년 현대차의 직접공정에서 일한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7월 포스코가 협력업체 근로자 59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제조업에서 도급과 아웃소싱(위탁) 업체가 들어설 곳이 없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로펌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불법 파견의 범주에 대한 대법원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새로운 입법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법원 단계에서 사내하도급 근로자도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 기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현대제철, 포스코, 한국GM, 현대위아, 금호타이어 등 사내하도급과 관련한 소송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유통 등 다른 업종에도 비상이 걸렸다. 완성차 물류업체 관계자는 “사내하도급에서 협력업체를 사용하지 말고 전부 직고용하라는 의미”라며 “제조업 도급에 종말을 고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2차 협력업체의 간접생산 근로자 3명에 대해 “심리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파기 환송하면서 간접공정 전부를 불법 파견으로 본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회사나 공정별로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직고용이 상당부분 진행된 만큼 파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이미 ‘사내하도급 특별협의’를 통해 2012년부터 2020년 사이에 현대차 9179명, 기아 1869명 등 1만1048명의 사내하도급 직원을 특별채용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판결 내용에 따라 각 사업장에 맞게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오현아/곽용희/박한신 기자 5hyun@hankyung.com